안녕, 원더걸스 원고의 나열


설을 코앞에 두고 많은 사람이 며칠간의 연휴에 진입할 무렵 네 여성은 무기한 안식에 들어갔다. 원더걸스가 공식적으로 해체 소식을 전한 것이다. 연초부터 멤버들의 재계약과 관련해 이런저런 말이 나왔으나 유빈, 혜림만 JYP 엔터테인먼트에 머물기로 하면서 그룹으로서는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이제 원더걸스는 가고 원더걸스였던 이들만 남았다.

2월이면 데뷔 10주년을 맞지만 그 기간을 다 채우지 못해서 해체 소식이 더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다수의 걸 그룹이 이른바 "7년 차 징크스"(공정거래위원회의 표준전속계약서에 의거해 가수들의 최장 계약 기간은 7년으로 한정된다.)를 극복하지 못하고 흩어지는 상황에서 그 이상의 세월을 함께했다는 것만도 대단하다. 짧지 않은 세월을 지나오면서 원더걸스는 가요계에 자신들의 자취를 선명하게 기록했다.


복고-후크송-삼촌팬의 중심
처음에는 다소 불안했다. 많은 히트곡을 배출한 특급 싱어송라이터이자 god를 국민 아이돌 그룹으로 만든 박진영이 제작해 이목을 끌었으나 딱히 돋보이는 면이 없었다. 데뷔곡 'Irony'는 박진영의 장점인 팝 감성만 부각됐을 뿐 압도적인 매력을 발산하지 못했다. 멤버들의 가창력도 그저 그랬다. 이름과 달리 조금도 경이롭지 않았다.

하지만 박진영과 원더걸스는 같은 해 선보인 'Tell Me'로 초반의 우려와 허탈감을 말끔히 씻어 냈다. 노래는 미국 가수 Stacey Q의 1986년 히트곡 'Two Of Hearts'를 차용해 경쾌함을 터뜨렸다. 동시에 귀에 쏙 들어오는 후렴으로 중독성도 나타냈다. 당시 가요계의 핵심 트렌드였던 복고와 후크송 문법이 이들로부터 개시됐다. 게다가 "어머나" 부분에 커다란 강조점을 만든 소희의 깜찍한 표정은 장성한 사내들도 녹다운시켜 버렸다. 가요 소비층 확산을 이끈 "삼촌팬" 열풍도 원더걸스가 시작이었다.

이듬해 그룹은 'So Hot'과 'Nobody'로 히트를 이어 가며 복고, 후크송 유행의 선두를 지켰다. 영미에서 신스팝, 1980년대 감성의 댄스 팝 리바이벌 움직임은 Lady Gaga의 'Just Dance'가 출시 8개월 만인 2009년 1월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것을 기점으로 본격화됐다. 이보다 원더걸스가 먼저 우리나라에서 댄스 팝 열기를 지핀 것이다. 원더걸스는 1년 6개월 만에 이름과 같이 놀라운 광경을 연출했다.


전국적인 춤판을 만들다
원더걸스의 급부상에 막대한 역할을 한 요소로 안무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아기자기한 포인트 동작과 보통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는 춤을 앞세워 대중의 시선을 끌었다. 'Tell Me'는 Madonna의 1983년 히트곡 'Holiday'의 안무 일부를 베끼긴 했어도 가볍게 허공을 찌르는 몸짓으로 발랄함을 확실히 어필했다. 'Nobody' 또한 한 번만 봐도 머리에 각인되는 안무로 인기를 더했다.

2007년부터 크게 일어난 UCC 열풍은 그룹이 가파른 상승선을 그릴 수 있도록 도왔다. 그해 인터넷에는 일반인들이 제작한 'Tell Me' 패러디 영상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군인텔미", "경찰텔미", "여고생텔미", "연예인텔미", "스님텔미", "외국인텔미" 등 각계각층에서 패러디가 쏟아져 나왔다. 간단하게 말해서 동물 빼고 다 따라 했다. 'Nobody'도 많은 연예인이 따라 해서 텔레비전만 켜면 쉽게 볼 수 있었다.

요즘 웬만한 아이돌 그룹은 노래를 내기만 하면 지상파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한다. 음원차트 1위도 수월하게 달성한다. 하지만 길어 봤자 2, 3주, 짧게는 몇 시간 만에 그 자리에서 내려온다. 'Tell Me'와 'Nobody'는 그런 모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이용할 수 없는 두메산골, 외딴 섬에 거주하는 사람 빼고는 누구나 다 안다. 이런 업적을 보유한 걸 그룹은 얼마 없다.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미국 진출
다수의 팬이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인터넷 신조어로 표현하자면 "흑역사"나 다름없다. 영어로 녹음한 'Nobody'가 2009년 빌보드 싱글 차트 76위에 오르는 역사적인 일을 달성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다. Jonas Brothers의 북미 투어 공연에 게스트로 서기도 했으나 인지도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그 어떤 프로모션도 없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과 비교하면 한없이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활동이었다.

그룹의 미국 시장 진출을 다룬 TV 영화 "더 원더걸스"도 이렇다 할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2012년 출시한 'The DJ Is Mine'과 'Like Money'는 외국 작곡가가 만들고 당시 팝 음악에서 유행하는 일렉트로팝, 덥스텝 장르로 현지화를 꾀했음에도 주목받는 데 실패하고 만다. 분명히 열심히 하고 음악도 그럭저럭 괜찮음에도 성공은 이들을 찾아오지 않는 상황. 세계 최대 시장이라는 그럴듯한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미국에서의 활동을 병행하며 발표한 '2 Different Tears', 'Be My Baby', 'Like This'가 인기를 얻긴 했어도 데뷔 초에 버금가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1년이 넘는 공백, 신인 걸 그룹의 대거 출현으로 원더걸스의 가요계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여기에 데뷔 때부터 고수해 온 복고 콘셉트와 새로운 스타일의 시도를 어중간하게 줄타기하면서 음악적 색채도 애매해졌다.


놀라움을 안긴 밴드로의 변신
상업적 성적이 예전만 못하다고 에너지가 다한 것은 아니었다. 원더걸스는 2015년 밴드로 포맷을 재구성한 [Reboot]를 발표하며 다시 한 번 강렬한 인상을 전했다. 누가 보기에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이미 큰 인기를 누렸고 어느 정도 히트가 보장되는 위치에 있는 가수가 평소와는 전혀 다른 노선을 택할 때에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원더걸스는 정성 어린 변신으로 왕성한 원기를 과시했다. 더불어 멤버들이 작사, 작곡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뮤지션으로 한 단계 성숙하는 국면을 연출했다.

3년 만에 낸 신작 [Reboot]는 국내 대중음악계에서 거의 접할 수 없었던 라틴 프리스타일(Latin Freestyle) 장르를 주메뉴로 택했다는 점에서도 이례적이다. 다수의 가수가 신스팝으로 복고 트렌드를 따를 때 원더걸스는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는 양식을 취해 신선함을 확보했다. 라틴 프리스타일 외에도 뉴 스쿨 힙합, 신시사이저를 장착한 발라드 등 1980년대를 관통하는 기획으로 앨범은 더욱 빛났다.


섭섭한 이별, 그래도…
원더걸스는 지난해 7월 레게풍의 'Why So Lonely'를 출시하며 또다시 변화를 선보였다. 이 노래를 포함해 EP에 실린 다른 두 곡도 역시 멤버들이 작사, 작곡하면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재차 뽐냈다. 새롭게 도전한 밴드 체제는 한층 안정적으로 느껴졌다. 어느덧 이들은 어엿한 뮤지션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팬들의 기대감은 더욱 상승한다. 데뷔 10년 차에 이런 감상을 뽑아내기란 쉽지 않다. 보통 걸 그룹들과의 차별화에 성공했으며 준수한 작품성까지 이룬 덕분이다. 음악적으로 보고 싶은 것이 아직 많기 때문에 해체를 아쉬워할 수밖에 없다. 많은 팬의 바람과 달리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 섭섭해도 보내 줘야 할 때다.

원더걸스는 가고 이제 원더걸스였던 이들만 남는다. 어디를 가나 들려온 탓에 누군가는 싫증을 내기까지 했던 'Tell Me', 'Nobody'도 그리워질 일만 남았다. 유행을 선도하며 도전과 변화를 위해 노력하던 모습은 많은 이에게 기쁜 추억으로 저장될 것이 분명하다. 최근 재결합해 복귀하는 선배 아이돌 그룹처럼 이들도 언젠가 원더걸스로 컴백할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도입부를 장식하던 인장(印章) 같은 구절 "원더걸스! We're back!"이 더욱 반갑게 느껴질 듯하다.

10년 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안녕, 원더걸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550&startIndex=0

덧글

  • goodvibes 2017/02/02 17:43 # 답글

    why so lonely랑 Reboot 앨범 듣고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그룹이었거늘... ㅜㅜ 또 하나의 아이돌이 역사속으로 사라지네요 ㅜㅜ 아쉽습니다...
  • 한동윤 2017/02/03 10:43 #

    아예 은퇴하는 것도 아닌데 워낙 큰 일을 많이 해서 더 아쉽게 느껴지네요 ㅠㅠ
  • 이글루스 알리미 2017/02/06 08:47 # 답글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2월 6일 줌(zum.com) 메인의 [이글루스]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한동윤 2017/02/06 10:46 #

    네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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