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음악 추천] 유행 따윈 연연하지 않는다. 원고의 나열

유행을 타는 일은 음악인들에게 불가피한 생존 수단이 되곤 한다. 현재 많은 사람이 즐기는 스타일을 취해야 그들에게 편안하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까닭이다. 신인, 중견 할 것 없이 다수가 대중의 눈과 귀에 들고자 유행을 따른다.

이 현상에 동참하지 않는 뮤지션들도 물론 존재한다. 어떤 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며 본인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다. 때로는 미련하게 비치기도 하는 우직함 덕에 시장은 다양성과 균형을 유지한다. 나아가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계속해서 나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지금 당장 주목받지 못할지라도 중대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데뷔 EP [선셋](Suneset)을 출시하며 음악계에 첫발을 내디딘 92914는 무던하면서도 독특한 R&B를 들려준다. 대개 R&B는 넘실거리는 리듬과 팍 터지는 가창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권주평과 이준기로 이뤄진 이 듀오는 팝과 인디 록의 성분을 더해 다소곳한 스트레이트함을 나타낸다. 보컬은 한두 문장을 차분한 멜로디에 실어 되풀이할 뿐이다. 분명 R&B이긴 한데 많은 사람이 익히 아는 모습이 아니라 특이하다.

자극과 친해지기를 거부한 음악은 또 다른 개성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남녀 간의 육체적 관계를 묘사한 R&B 노래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92914는 수수하게 연정을 표하거나 일상의 어느 순간에 든 감정을 나타내는 데에 주력한다. 센 표현이 난무하는 시대에 무난함으로 방향을 설정해 더 돋보인다.

왼쪽부터 92914, 베거스, 몰디 앨범


크라잉 넛 이후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에 낯선 펑크 록 밴드가 출연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는 찰나에 그쳤다. 일부 뮤지션이 방송에서 행한 몰지각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펑크 록은 좋지 않은 인식을 퍼뜨리며 주류와 영원한 이별을 고했다. 그러나 방송국이 이들을 섭외한 것은 애초에 '인디 밴드도 소개한다.'는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았다. 펑크 록은 대대적 인기와는 거리가 멀다.

때문에 새 EP [블루길](Bluegill)을 낸 더 베거스(The Veggers)는 하드코어 펑크 밴드라는 사실만으로도 유행과 격리된다. 이들 역시 다수의 기호에 연연하지 않는다. 16분이 되지 않는 짧은 분량의 앨범을 통해 아쉬움, 좌절, 분노 등 무거운 기운을 토해 낸다. 밝은 분위기를 띠는 곡이 있긴 해도 전면에 부각되는 태도는 염세주의다. 하지만 장르의 특성인 화끈한 연주 덕분에 더 베거스의 노래는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세대를 위한 통쾌한 공감대 형성으로 다가온다.

많은 래퍼가 단순하고 성긴 비트에 카랑카랑함을 응집하는 트랩 장르에 랩을 펼친다. 이 동향은 약 3년 넘게 이어져 오는 중이다. 도끼, 더콰이엇, 빈지노 등이 부른 '연결고리', 지코의 '말해 Yes or No', 위너의 송민호가 참여한 '거북선' 등 트랩을 외투로 걸친 힙합 노래들이 음원차트 상위권을 휩쓴 경우가 많다.

신인 래퍼 몰디(Moldy)는 이 경향을 따르지 않는다. 지난 1월 선보인 데뷔 EP [네이처 보이](Nature Boy)에서 그는 정글과 드럼 앤드 베이스에 랩을 담는다.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의 하위 장르인 이들 양식은 1분당 비트 수가 150에서 180 정도를 오가는 빠른 템포가 특징이다. 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성행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렇다 할 세력을 형성하지 못한 음악이다. 철마저 한참 지난 장르를 택한 모습에서 남의 취향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강단을 엿볼 수 있다. 기괴함과 익살을 겸비한 노랫말도 그만의 개성을 부연한다.

(한동윤)
2017.02.07ㅣ주간경향 121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