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가 외면한 명곡들 원고의 나열

이달 26일 "89회 아카데미 어워드"가 열린다. 일명 "오스카상"으로 불리기도 하는 본 시상식은 "골든 글로브 어워드"와 더불어 미국 최대의 영화제로 통한다. 영화인들이 주인공인 잔치지만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와 "최우수 오리지널 송" 등 사운드트랙 부문도 있어 음악 관계자들의 이목도 항상 쏠린다.


보통 음악팬들이라면 후자의 카테고리에 관심이 갈 것이다.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이기 때문이다. 올해 "최우수 오리지널 송" 부문에는 "라라 랜드"(La La Land)의 'Audition (The Fools Who Dream)'와 'City Of Stars', Justin Timberlake가 부른 "트롤"(Trolls)의 'Can't Stop The Feeling!', Sting이 부른 "짐: 더 제임스 폴리 스토리"(Jim: The James Foley Story)의 'The Empty Chair', "모아나"(Moana)의 'How Far I'll Go'가 후보에 올랐다. 이 노래들 가운데 어떤 작품이 수상의 영예를 누릴지 궁금하다.

수상자에게는 형용할 수 없는 기쁜 일이겠지만 모든 이가 결과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노래, 내 판단에서 우수하다고 생각하던 노래가 상을 받지 못할 때에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상의하고 투표해 수여하는 상이지만 외면당했다고 여겨지는 명곡들은 언제나 있다.

88회 | 제임스 본드를 누가 이겨?
2016년에 열린 88회 시상식에서는 Sam Smith가 부른 "007 스펙터"(Spectre)의 주제곡 'Writing's On The Wall'이 트로피를 가져갔다. "골든 글로브 어워드"의 "최우수 오리지널 송" 부문도 007-Sam Smith 조합이 차지했다. 수십 년의 역사를 쌓아 오며 신화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한 007 시리즈와 초특급 신인의 만남은 정말 막강했다.

007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던 노래 중 하나는 The Weeknd의 'Earned It'이다. The Weeknd 역시 누구 못지않은 거물 신인이었으며, 이 노래를 통해 믹스테이프들이나 정규 1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줘 한층 특별했다. 차트 성적도 훌륭했다. 하지만 노래를 품은 영화에 대한 평이 안 좋았던 것이 문제였는지 수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The Weeknd에게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Fifty Shades Of Grey)는 기쁨 반, 아쉬움 반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이때 Lady Gaga도 함께 고배를 마셨다. 그녀가 부른 'Til It Happens To You'는 다큐멘터리영화 "더 헌팅 그라운드"(The Hunting Ground)의 주제곡으로 후보에 올랐다. 노래의 분위기는 대학 내 성폭력을 다룬 영화의 주제와 시선처럼 묵직하다. 내가 겪은 고통은 당신에게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알 수 없을 것이라는 노랫말은 피해자들이 느낄 아픔을 극명하게 나타내 준다. 의미 있는 노래였기에 상을 탔지 못한 것이 더 아쉽다.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무척 각별한 시상식이었다. 성악가 조수미가 Paolo Sorrentino 감독의 "유스"(Youth) 사운드트랙 'Simple Song #3'로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인 가수가 "최우수 오리지널 송" 부문 후보에 오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러나 Sam Smith에 밀려 그 이상의 역사적이 일은 달성하지 못했다. 기쁜 소식을 어서 들을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69회 | 에비타, 이 독한 것!
수긍을 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가 나온 해다. 1997년에 열린 69회 시상식은 Madonna가 부른 "에비타"(Evita)의 사운드트랙 'You Must Love Me'에 상을 안겨 줬다. 그런데 'You Must Love Me'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던 것은 'Don't Cry For Me Argentina'다. 두 노래를 비교했을 때 작품성도 'Don't Cry For Me Argentina'가 더 나아서 상을 받아야 한다면 이 노래가 받아야 했다.

문제는 상의 이름이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는 1976년 작곡가 Andrew Lloyd Webber와 작사가 Tim Rice가 제작한 콘셉트 앨범 [Evita]를 통해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기존에 있던 곡이니 "오리지널 송"이라는 타이틀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가 워낙 대작이라서, Madonna가 열연을 펼쳐서 음악에도 상은 하나 줘야겠다는 생각에서 'You Must Love Me'를 뽑은 것만 같았다.


이때 가장 섭섭했을 사람이 Celine Dion이 아니었을까 하다. 그녀가 부른 "업 클로즈 앤 퍼스널"(Up Close & Personal)의 'Because You Loved Me'는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You Must Love Me'보다 훨씬 차트 성적이 좋았다. 게다가 특유의 어덜트 컨템포러리 느낌을 유지하는 가운데 R&B, 가스펠의 성격을 더해 색다른 면모도 확보했다. "그래미 어워드"에서 상을 하나 받긴 했지만 작곡가에게 주는 상이라서 Celine Dion은 더 헛헛했을지도.

이해에 "어느 멋진 날"(One Fine Day)의 사운드트랙인 Kenny Loggins의 'For The First Time'도 제법 인기 있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거의 "댓 씽 유 두"(That Thing You Do!)의 동명 주제곡을 응원했다. 영화 속 가상의 밴드 The Wonders의 유일한 히트곡이 된 이 노래는 흥겨운 로큰롤 리듬으로 관객들을 매혹했다. 영화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도 극장을 나오면서 멜로디를 흥얼거렸을 것이다.

86회 | 그해 겨울은 왕국만 따뜻했지
극한(極寒)의 왕국에서 불어 온 바람에 경쟁자들은 얼어붙었다. 2014년에 열린 86회 시상식에서는 "겨울왕국"(Frozen)의 'Let It Go'가 트로피의 주인이 됐다. 세계 곳곳의 가수 지망생과 음악팬이 부른 커버 영상이 유튜브를 도배에 가깝게 채웠으니 상을 받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그나마 "겨울왕국"에 맞설 수 있던 작품이 "슈퍼배드 2"(Despicable Me 2)였다. 같은 애니메이션으로서 박스오피스 성적도 훌륭했다. 사운드트랙으로 쓰인 Pharrell Williams의 'Happy'는 빌보드 싱글 차트 10주 연속 넘버원을 기록했으며 리메이크도 많이 이뤄져 그해 최고의 히트곡으로 등극했다. "아카데미"에서는 선택받지 못했으나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팝 솔로 퍼포먼스"를 수상해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67회 | 보기 좋았던 가족 간의 싸움
두 들러리는 한없이 초라했다. Michael Keaton 주연의 코미디 영화 "페이퍼"(The Paper) 주제곡 Randy Neman의 'Make Up Your Mind'와 Arnold Schwarzenegger 주연의 코미디 영화 "쥬니어"(Junior) 주제곡 Patty Smyth의 'Look What Love Has Done'이 후보에 올랐으나 이들을 향한 사람들의 기대는 시큰둥했다. 어쩌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는 표현이 정확할지 모르겠다. 옆에서 더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과 매체의 시선은 같은 팀의 트로피 쟁탈전에 쏠렸다. 1995년에 열린 67회 시상식은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 'Circle Of Life', 'Hakuna Matata' 등 "라이온 킹"(The Lion King) 사운드트랙들의 대결로 좁혀졌다. 이 노래들 모두 Elton John이 작곡하고 Tim Rice가 작사했으니 사실상 두 사람의 독주나 다름없었다. 결국 트로피의 주인공은 주제곡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가 된다.

세 노래 중 차트 성적도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가 가장 좋다. 하지만 진정한 승자는 나머지 두 노래라고 해야 할 듯하다. 'Circle Of Life'는 이후 다른 영화, 드라마 등에 삽입되면서 많은 이와 편하게 만났다. 특히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에서 아프리카나 초원, 동물과 연관성을 띠는 장면이 나올 때 어김없이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깔려 무척 익숙해졌다. 한국에서는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보다 'Circle Of Life'를 들어 본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영화에서 몽구스 티몬과 멧돼지 품바가 연신 얘기하는 'Hakuna Matata'도 유명하다. "걱정할 것 없어!"라는 뜻의 스와힐리어를 쓴 이 노래는 경쾌한 멜로디, 긍정적인 내용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미녀는 괴로워" 중 주인공이 이 문양의 문신을 한 것이 촉매가 돼서 문신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57회 | 팝 명곡들의 대접전
1985년이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가장 피 튀기는 해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라디오 신청곡으로 쇄도하는 팝 명곡들이 이해에 다 몰렸다. Phill Collins의 'Against All Odds', Kenny Loggins의 'Footloose', Ray Parker Jr.의 'Ghostbusters', Deniece Williams의 'Let's Hear It For The Boy', Stevie Wonder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가 후보였다. 트로피는 Stevie Wonder가 부른 "우먼 인 레드"(The Woman In Red) 주제가가 차지했다.

지난해 여성 버전으로 리부트되기도 한 "고스트버스터즈"(Ghostbusters)의 동명 테마곡은 한 번만 들어도 귀에 쏙 들어오는 루프를 앞세워 큰 인기를 끌었다. 음산한 도입부로 영화적 재미를 연출했고 뒤에 가서는 반음 올려 연주한 루프를 겹치면서 긴장감을 높였다. 경쾌함과 탄탄함을 겸비한 댄스음악이다. 하지만 미국 싱어송라이터 Huey Lewis가 같은 해 출시한 자신의 노래 'I Want A New Drug'를 'Ghostbusters'가 표절했다고 주장하면서 잡음이 일었다. 앞선 해에 열린 56회 시상식에서 'Flashdance... What A Feeling'으로 "최우수 오리지널 송"을 수상한 Irene Cara가 이 노래의 백업 보컬을 맡았다.


국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지만 "어게인스트"(Against All Odds)는 그래도 노래 하나는 건졌다. 외국 가수들이 여러 차례 리메이크하면서 끊김 없이 대중과 만났고 박정현, 휘성도 취입해 국내 음악팬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힘과 감미로움이 공존하는 멜로디도 근사하지만 Phil Collins가 드러머인 만큼 간주에서의 드럼 톤이 굉장히 멋있는 곡 중 하나이기도 하다.

2011년 리메이크됐을 정도로 "자유의 댄스"(Footloose)는 당시 인기가 대단했다. 사실 스토리를 따진다면 볼품없는 작품이긴 하지만 역동적인 사운드트랙 덕에 많은 이를 극장으로 집결시킬 수 있었다. 주제곡 'Footloose'는 경쾌함으로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기성세대의 관습과 지도에 압박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탈출구가 돼 줬다. 후보에 함께 오른 'Let's Hear It For The Boy' 또한 프리스타일, 신스팝을 혼합한 댄서블함으로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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