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이 이달 13일 새 앨범 [You Never Walk Alone]을 출시했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정규 2집 [Wings]의 외전 같은 작품으로, 기존 수록곡에 '봄날', 'Not Today' 등 네 편의 신곡을 추가했다. 그룹의 기획사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신곡들에 청춘을 향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젊은 음악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은 콘셉트다. 2집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한국 가수로서는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터라 방탄소년단도, 팬들도 활동과 응원에 흥이 붙을 듯하다.

나날이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신보 발매를 앞두고 조금은 맥이 빠질 소식이 들렸다. 신곡 중 'Outro: Wings'가 KBS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은 것이다. 첫 번째 랩 파트에서 "새꺄 쫄지 말어."라는 가사가 욕설 및 저속한 표현에 해당돼 방송에 나갈 수 없게 됐다. 이 가사는 'Outro: Wings'의 미완성 버전인 [Wings]의 'Interlude: Wings'에도 등장하지만 그때는 아예 심의 신청을 하지 않았다. 'Outro: Wings'로 방송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긴 해도 팬들에게는 아쉬운 일일지 모르겠다.
억울하게만 느낄 결정은 아니다. 방송국은 건전하지 못한 콘텐츠를 여과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실 요즘 초, 중, 고등학교 학생 다수가 저것보다 거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쓴다. 그러나 미취학 아동들도 음악방송이나 라디오를 통해 접할 가능성이 있으며, 기본적으로 속된 표현을 전파해서는 안 되기에 불가 판정을 내린 것이다.
많은 가수가 자신의 노래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서 방송국의 심의를 받는다. 그리고 다수의 노래가 욕설, 비속어, 폭력성, 선정성, 간접 광고 등 이런저런 사유로 퇴짜를 당하곤 한다. 부적격 판정을 수긍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반면, 납득하기 어려운 사례도 더러 발생한다.
이름만 얘기하지 않으면 괜찮아!
2014년 에디킴의 'Slow Dance'가 KBS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가사에 언급된 프랑스 보드카 브랜드 "그레이 구스"(Grey Goose) 때문이었다. 이것이 간접 광고에 해당해서 방송에 내보낼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캐나다 구스"는 청소년들의 고가 브랜드 선호 현상을 조명한 뉴스 보도로 자연스럽게 홍보가 됐지만 "그레이 구스"는 방송 전파를 탈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 프랑스는 그렇게 의문의 1패를 기록했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밀당의 고수'가 심의를 통과한 것을 고려하면 어이없게 느껴지는 일이다. '밀당의 고수'에는 패스트푸드 브랜드 "맥도널드"의 시엠송 멜로디가 사용됐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 멜로디라서 그 부분을 들으면 많은 이가 "맥도널드"를 떠올릴 것이고 나아가서는 햄버거를 먹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수 있을 듯하다. 그럼에도 '밀당의 고수'는 상품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아서 제재를 받지 않았다.
에디킴이 "그레이 구스"를 가사에 쓴 것이 철저히 브랜드를 홍보할 의도였는지, 아니면 음악적 표현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배경이 어찌 됐든 상품을 떠올리게 되는 결과만을 봤을 때 더 명확하고 효과적이었던 것은 'Slow Dance'가 아니라 '밀당의 고수'라고 단정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명시했고 다른 하나는 암시했다. 불가 판정은 명시한 쪽에만 내려졌다. 전체적인 상황은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직접 표현을 중시하는 기준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였다.
심의는 복불복?!
2011년 미미시스터즈의 데뷔 앨범 [미안하지만... 이건 전설이 될 거야]에 실린 '미미'가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문제가 된 가사는 "당신을 만난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네."였다. 벙어리가 언어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미미시스터 측은 다른 방송국에서는 통과됐는데 KBS에서만 불가 판정을 받았다며 의아해했다.

이상하다고 느낄 만했다. 미미시스터즈를 세상에 알린 장기하와 얼굴들이 2009년에 발표한 '달이 차오른다, 가자' 역시 "지레 겁먹고 벙어리가 된 소년"과 같이 벙어리를 노랫말에 썼음에도 심의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미미시스터즈의 노래가 방송 불가 판정을 받던 순간까지도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방송에 잘만 나오고 있었다. 2년 만에 같은 단어를 두고 상반되는 결과가 나오니 당사자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이 광경을 통해서 심의는 복불복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심의하는 사람에 따라, 그 사람의 정서와 견해에 따라 같은 단어라도 허락과 불허가 갈린다. 미미시스터즈의 '미미'가 부적격 판정을 받기 한 달 전 엠블랙의 'Stay'는 가사에 장님("난 곧 떠날 사랑에 눈이 먼 장님")이라는 표현을 썼음에도 심의에 통과했다. 장님도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미미시스터즈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정말 분했을 것 같다.
악동뮤지션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심의의 피해자다. 2014년에 낸 데뷔 앨범의 'Galaxy'는 KBS로부터 제목으로 사용된 단어의 반복으로 스마트폰 광고로 비칠 우려가 있다면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이와 달리 레이디스 코드가 2016년에 발표한 'Galaxy'에는 어떤 제약도 가해지지 않았다. 레이디스 코드의 노래에서는 글로벌 대기업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았던 걸까?
추억의 장소는 추억으로만 간직하기
방탄소년단은 2015년 발표한 'Ma City'를 통해 멤버들이 살던 동네를 찬양했다. 제이홉은 광주, 슈가는 대구, 지민은 부산, 랩몬스터는 경기도 일산을 자랑했다. 그런데 이 중 랩몬스터의 가사가 문제가 됐다. "라페스타", "웨스턴돔" 등 일산에 있는 종합쇼핑몰의 브랜드를 거론한 것 때문. 결국 노래는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지난해 말 로꼬가 발표한 '남아 있어'도 KBS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로꼬는 자신의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이 노래를 만들었다. 팬들과 함께 호흡을 나눴던 무대를 떠올리는 내용은 좋았으나 "브이홀", "롤링홀", "악스홀" 등 홍대의 클럽을 열거한 것이 부적격 사유가 됐다. 지난날을 회상했을 뿐인데 업소 홍보의 오명을 썼다.
이들이 당한 배척을 통해 또 하나 배운다. 추억을 얘기할 때는 적당히 구체적이어야 한다. 동네, 거리 정도는 괜찮지만 정확한 장소를 얘기하면 안 된다. 창작자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심의의 잣대는 냉혹하다.
일본어는 있을 수 없지
지난해 가을 선우정아의 '츤데레'와 라디오 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인 구자형의 '새 가락 진도 아리랑'이 KBS로부터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선우정아는 일본어 합성어를 쓴 제목 때문이고, 구자형은 가사 중 벚꽃의 일본어 표현인 "사쿠라"를 썼기 때문이다. 두 가수는 방송국이 허락하지 않는 일본어 선택으로 "뻰찌"를 먹었다.

우리나라 방송가는 일본 문화에 대해 아직 관대하지 않다. 뼈아픈 식민의 역사를 잊을 수 없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일본 노래나 영화는 방송에 내보내지 않으면서 일본의 요리, 관광지는 꾸준히 소개하는 모습은 무척 아이러니하다.
일본어는 족족 차단되지만 영어로 점철된 노래는 방송에 잘만 나오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 노래들이 쌓이고 쌓일수록 우리는 영어에 대해 둔감하게 된다. 사실 이미 그렇게 된 상황이다. 한국에서 우리말로만 이뤄진 노래를 보기가 어렵다는 게 우스우면서도 무섭다. 문화 식민화가 이렇게 이뤄지는 것이다.
드라마는 되지만 노래는 안 됨
노래에서 상품이나 영업장의 이름을 그대로 가사에 표출하는 것은 현실성을 부각하기 위함이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물품이나 건물, 대중에게 익숙한 상호를 여과 없이 드러내면 듣는 이는 가사를 통해 사실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노래는 허구가 아닌 진짜 삶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청취자들과 일상적인 부분으로 공감을 구하려는 의도일 뿐 특정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한 작사는 결코 아닐 것이다.
지상파 방송의 드라마를 보면 간접광고가 물결을 이룬다. 주인공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나 주인공 가족들이 외식을 하는 음식점은 죄다 프랜차이즈 체인점이다. 그들의 모습 뒤에는 항상 회사의 로고와 이름이 선명하게 자리한다. 말만 간접일 뿐 대놓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배우들이 연기로 제작에 협찬하는 회사의 제품 설명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드라마와 달리 노래는 언급이 허락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판이한 양상은 물질적 원조에 의해 좌우된다. 이 회사는 드라마 제작을 지원했으니 상품을 방송에 내보내지만 이 노래 속 브랜드는 자기 방송국에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노래 송출을 차단한다. 방송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면 홍보의 목적을 달성하게 해 주지만 홍보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방송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면 매몰차게 까는 것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EXO의 'Lotto'와 라비의 'Ladi Dadi', 긱스의 'Divin''과 K.A.R.D의 'Oh NaNa' 등이 KBS로부터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앞의 두 노래는 "로또"를, 뒤의 두 노래는 "인스타그램"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들보다 앞서 나온 원더걸스의 'Sweet & Easy'는 "누텔라"가 들어간 것 때문에 방송 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상표를 다룬 노래들이 거듭해서 방송된다면 자칫 브랜드 공해를 이룰 수도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제재는 필요하다. 그러나 가사의 전체 맥락을 무시한 채 단어 몇 개만 갖고 홍보 의도로 단정하고 방송을 금지하는 행태는 쓴웃음만 자아낸다.
그렇다고 꼼수는 부리지 않길
가수와 기획사들은 본인의 노래, 소속 뮤지션의 노래가 심의에 통과할지 못할지 이제 웬만큼 안다. 노래에 비속어, 욕설, 상표 이름 등이 들어갔다면 걸릴 것을 예상해서 심의 받기를 아예 포기하는 이도 많다. 그러나 어떤 판결이 날지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심의를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방송국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노래를 발표하면 신문사들이 그 결과를 보도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홍보를 노리는 것이다. 선전의 새로운 수단이긴 하지만 보기에는 그리 좋지 않다. 이런 식의 꼼수는 부리지 않길 바란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609&startInde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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