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장범준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영화 "다시, 벚꽃"이 개봉한다. '벚꽃 엔딩'을 통해 봄의 새로운 전령이 된 그의 이력에 걸맞은 제목과 개봉일이 빠르게 각인된다. 영화는 뮤지션, 한 집안의 가장, 20대 청년 등 장범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줄 예정이다. 또한 노래에 대한 숨겨진 얘기와 활동에 대한 입장도 담았다고 한다. 버스커 버스커와 장범준의 팬들이라면 4월이 기다려질 듯하다.

음악 애호가들에게 음악, 뮤지션과 관련된 영화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적 결핍도 느끼지 않을까 싶다. 외국에서는 "라라 랜드"(La La Land), "씽"(Sing), "송 투 송"(Song To Song) 등의 뮤지컬 상업영화가 꾸준히 나오는데 우리나라는 거의 전무한 탓이다. "원스"(Once)나 "싱 스트리트"(Sing Street) 같은 저예산 음악영화가 국내에서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인 것을 보면 음악영화의 시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그러나 낙관과 다르게 "쎄시봉"을 제외하고 국내 음악영화의 박스오피스 성적은 대체로 처참했다.
무척 아쉽다. 그래도 뮤지션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와 음악이 핵심 메뉴가 되는 영화가 이따금 발표되니 그것들로 위안을 삼는다. 한국 음악영화의 영역이 더욱 넓어지고 단단해지길 희망한다.

연기는 스톱 음악은 | "플레이"
인디 음악 마니아들은 환호했다. 감미로우면서도 힘 있는 모던 록으로 2009년 데뷔한 해부터 남다른 존재감을 뽐낸 메이트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에 큰 관심이 집중됐다. 여성 음악팬들은 더욱 기뻐했다. 임헌일, 정준일, 이현재 세 멤버가 훈훈한 외모를 보유한 덕분이었다. 신인 감독, 신인 밴드가 만든 영화였음에도 "플레이"는 1만 2천 명이 넘는 관객수를 기록하면서 선전했다. 메이트의 열띤 지지자들이 이룬 성적이다.
물론 연기 경험 없는 뮤지션들과 초짜 감독이 대작을 만들 리 만무했다. 멤버들의 연기는 내내 경직된 상태였으며 장면들의 연결은 타이트하지 않았다. 영화는 하품을 이끌어 낼 뿐이었다. 음악영화가 아닌 수면 보조 기능성 장르로 느껴질 정도였다. 카메오로 송영길이 나올 때 잠이 깬다. 하지만 곡을 쓰고 밴드로서 호흡을 맞춰 가는 모습, 사운드트랙은 사이사이 지루함을 상쇄하는 역할을 했다.

내가 찾아 줄 테다 | "어떤 이의 꿈"
많은 사람이 제목 때문에 봄여름가을겨울을 떠올리겠지만 그들과는 상관없는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은 신화 김동완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밴드로 록 페스티벌에 서길 꿈꾸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5년째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행사 진행 담당자로 일하는 동완을 연기한다. 이렇게나마 음악과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꿈을 간직하고 있는 것. 하지만 무대를 그토록 동경하면서 다른 밴드들의 공연을 바라보기만 하는 모습이 왠지 짠하다.
김동완의 연기는 나쁘지 않지만 구성이 다소 답답하다. 김동완은 마치 "체험 삶의 현장"을 촬영하는 것처럼 묵묵히 일만 한다. 김동완을 모른다면 정말 행사 진행 요원으로 생각할 수준이다. 스토리의 양념이 되는 연애 전선은 최필립과 후지이 미나가 차지한다. 밴드 멤버가 앨범 제작비를 가로채고 튀는 바람에 뮤지션의 꿈을 또다시 보류하고 돈을 벌기 위해 작은 술집을 운영하는 모습도 갑갑하다. 남 좋은 일만 한다. 강압적으로 고구마 전분 10kg을 퍼먹는 느낌이다.
영화의 특수한 설정 때문에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의 모습이 계속 포착된다. 아니, 사실은 페스티벌 10주년을 기념하는 영화라서 그렇다. 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머야'를 시작으로 페퍼톤스의 '행운을 빌어요', Orange Range의 'Special Summer Sale' 등 현장감을 높여 줄 활발한 록 노래들이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덕분에 먼발치에서 페스티벌을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Orange Range, Wangel 등의 뮤지션들이 특별 출연으로 이름을 올렸다. 장미여관의 육중완도 카메라에 잡히지만 의도된 출연이 아니라서 크레디트에 등록되지 않았다.

겨우겨우 연명하는 |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
걸 그룹 나인뮤지스의 데뷔 준비 과정을 담은 영화다. 이들의 가수 도전기를 통해 영화는 한국에서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려면 얼마나 힘든지, 아이돌 그룹을 제작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를 서술한다.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춤 연습, 노래 연습, 인터뷰 준비 등 일정이 빡빡하다. 한창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놀 나이에 한정된 생활을 해야 하고 때로는 멤버들과 갈등을 빚는다. 스타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음을 말한다.
한편 영화는 기획 의도 이상을 전달한다. 한 멤버가 낙오하자 매니저는 에이전시를 통해 간단하게 새 멤버를 충원한다. 멤버 간의 정보다는 이익에 의해 운영되는 시스템, 스타를 꿈꾸는 젊은 아이들이 널리고 널렸다는 사실을 비춘다. 춤 연습을 참관하던 매니저는 동작이 과감하지 못한 멤버를 향해 "카메라 들어오면 네 얼굴 나왔을 때 따먹어야 될 거 아냐?"라며 윽박지른다. 앵글에 잡혔을 때 어필하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 표현에서 이 업계의 고쳐지지 않는 상스러움을 재차 깨달을 수 있다.
힘들고 답답한 나머지 연습에서 이탈한 멤버에게는 "또 시작이네, 저거." 하며 비아냥거린다. 규율을 깬 것은 잘못이지만 그래도 동고동락하는 관계에서 존중이 배제된 투다. 나인뮤지스의 첫 방송을 모니터링하던 임원들은 좋지 않은 퍼포먼스에 다들 못마땅해한다. 이때 한 매니저는 그룹이 지금 편하게 연습하는 편이라며 "죽여 놓아야 한다."고 말한다. 만족스러운 무대를 위해서는 혹독한 훈련이 필요함을 의미한 것이지만 저속하고 거칠다. 이 장면들을 통해 나인뮤지스를 제작한 스타제국뿐만 아니라 이 나라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의 천박함을 보게 된다.
물론 화면에는 담기지 않은 직원들과 연습생들 간의 보이지 않는 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강압하고 다그치는 육성 방식이 내내 나타나 한국 연예 산업의 흉한 단면을 드러내는 꼴이 됐다.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은 가수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회사, 연예계의 냉혹함과 교양 없음을 까발리는 자진 고발 르포나 다름없다.
2010년 이름에 부합하게 아홉 명의 멤버로 출발한 나인뮤지스는 2012년 8인조로 축소됐다. 이후 여러 멤버를 영입하며 9인조를 유지하던 그룹은 8인조가 됐다가 2016년 가을에는 6인조로 부피를 확 줄이게 됐다. 현재는 다섯 명의 멤버가 남은 상태.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도 아니고 어떻게 멤버가 한 명, 한 명 사라진다. 영화 부제처럼 그녀들의 서바이벌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같이 꿔요 | "다방의 푸른 꿈"
영화는 미미시스터즈가 부르는 헌정곡으로 시작된다. "태어나 보니 엄마는 이난영이야. 태어나 보니 아빠는 김해송이야." 영화가 다루는 김씨스터즈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다. 김씨스터즈는 '목포의 눈물'로 유명한 이난영과 일제강점기에 많은 히트곡을 쓴 작곡가 김해송 사이에서 태어난 김애자와 김숙자, 이들의 사촌 김민자로 이뤄진 걸 그룹이다.
한국 최초의 걸 그룹이라는 타이틀은 이난영이 속했던 저고리씨스터가 보유하고 있지만 원조 한류 걸 그룹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는 김씨스터즈가 갖고 있다. 1950년대 들어 미군부대에서 공연을 시작한 이들은 미국인 프로듀서에게 발탁돼 1959년 라스베이거스로 건너갔다. 미국에서 14년 동안 활동하면서 인기 버라이어티쇼 "에드 설리번 쇼"(The Ed Sullivan Show)에 스무 번 넘게 출연하는 등 많은 사랑을 받았다. 기타, 베이스, 드럼, 관악기, 국악기 등 많은 악기를 능숙하게 연주할 만큼 음악적 재능이 출중했기 때문이다. 노래 실력, 하모니는 기본으로 갖추고 있었다.
2014년 양희은이 리메이크하기도 한 '김치 깍두기'를 비롯해 영화 제목으로 쓰인 '다방의 푸른 꿈', '목포는 항구다' 등 우리말로 된 노래도 여럿 취입했다. 하지만 워낙 오래 전에 활동한 데다가 미국에 장기간 머문 탓에 젊은 음악팬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다. 영화의 극장 상영은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라도 꼭 보길 바란다. 한국 걸 그룹의 멋진 효시를 만날 수 있다.

따뜻함이 가득한 | "산책"
음악영화는 아니다. 음악이 주가 되는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음악이 소재가 될 뿐이다. 이 시대 최고의 유행어 "그런데 말입니다."로 독보적 위치를 구축한 김상중이 동네 작은 레코드점을 운영하는 영훈을 연기한다. 그렇다고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처럼 레코드점을 중심으로 굵직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음반점은 영훈의 음악에 대한 애정, 첫 사랑을 향한 그리움, 자신을 외부로부터 단절하려는 태도에 대한 은유로서 존재한다.
대학생 시절 포크 음악 동아리에서 활동한 영훈이 친구들과 함께 소극장 공연을 준비한다는 것이 작품 내 가장 넓게 분포하는 음악 얘기. 이 과정에서 로맨스와 가족 간의 관계 회복에 관한 내용이 잔잔하게 첨부된다.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무자극성 분위기와 현실성 있는 연출은 보는 이를 편안하게 몰입하도록 만든다. 포크 록, 연주곡으로 이뤄진 사운드트랙은 영화의 온기를 배가해 줄 것이다.

음악이 주메뉴가 되는 영화라서 음악인도 여럿 나온다. 영훈의 친구 세진 역을 맡은 양진석은 건축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1980년대 후반 포크 밴드 노래그림으로 가요계에 입문해 영화가 개봉할 때까지 두 편의 솔로 앨범을 낸 가수였다. 그가 주로 추구하는 음악이 포크 음악, 정갈한 팝이라서 영화의 인물 설정과도 잘 맞아떨어졌다. 이와 함께 윤도현, 이정열이 "반짝" 출연했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도 카메오로 등장해 음악적 기운을 보충한다. 음악 평론가가 아닌 스튜디오의 엔지니어 역이다. 그의 출연 분량은 총 1분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자연스러우면서 전문성이 묻어나는 연기로 뚜렷한 자취를 남긴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651&startInde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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