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파는 내 물건, 음악계 경매의 현장 원고의 나열

긴장감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나쁘지 않은 쇼였다. 지난달 28일에 열린 "2017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신의 놀이'로 "최우수 포크 노래" 부문을 수상한 이랑은 살림이 궁하다며 그 자리에서 트로피를 경매에 부쳤다. 그녀는 자신의 월세를 따져 트로피에 시작 가격 50만 원을 매겼다. 뒤이어 오직 현금으로만 참여가 가능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랑이 트로피를 낙찰자에게 넘기고 있다. ⓒ사진작가 조재무


트로피는 때마침 현찰 50만 원을 갖고 있던 한 남성에게 낙찰됐다. 경매는 금액이 오르고 경쟁이 붙는 것이 묘미인데 그런 상황 없이 단숨에 끝났다. 열기는 지펴지지 못했으나 시상식에서의 트로피 경매는 처음 있는 일이라 소소한 재미는 있었다.

언뜻 명예도 챙기고 돈도 챙기는 것처럼 보였던 깜짝 경매는 사실 준비된 퍼포먼스였다. 트로피를 산 사람은 이랑의 음반을 제작한 레이블의 대표라고 한다. 때문에 시상식에 대한 결례, 팔 트로피조차 없는 무명의 궁핍한 뮤지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기는 행위라는 비판은 불필요하다. 이랑은 경매 퍼포먼스를 통해 예술가에게 가해지는 경제난, 수고비가 제공되지 않는 업계의 관행을 유쾌하게 끄집어냈다.

이랑이 보여 준 행동과 달리 보통 경매는 경매 전문 회사를 통해 이뤄진다. 또한 이랑이 내건 조건과 다르게 현금뿐만 아니라 수표, 신용카드 다 취급한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큰 액수를 현장에 들고 오기에는 약간의 애로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카드로 지불한다고 해도 할부는 안 된다. 할부가 가능하면 그 자리는 빛 좋은 도떼기시장이지, 경매시장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뮤지션들의 물건은 경매에 자주 오른다. 재산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나오기도 하며, 때로는 업적을 기린다는 의미를 부여해 행사를 열기도 한다. 엄청난 가격이 매겨지는 모습도 볼만하지만 간혹 특이한 물품이 거래돼 색다른 구경거리를 연출하곤 한다. 이번 "다중음격"에서는 음악과 관련된 경매 현장을 모아 봤다.

스튜디오의 명기는 누가 가져갈까?
영국 애비 로드 스튜디오의 녹음 콘솔 EMI TG12345 MK IV가 이달 27일 경매에 나올 예정이다. 1971년에 만들어진 이 콘솔은 Wings, George Harrison, Ringo Starr, Kate Bush 등 여러 뮤지션의 음반 녹음에 쓰였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구식으로 여겨져 1983년 스튜디오를 떠나게 됐지만 현 소유주인 프로듀서 Mike Hedges에 따르면 아직도 잘 작동된다고 한다. 관상용 골동품이 아니기에 프로듀서, 엔지니어들의 눈에 빛이 들어올 것 같다.


이 콘솔이 사용된 가장 유명한 작품은 Pink Floyd의 기념비적인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이다. 현대사회의 어두운 면면을 조명한 콘셉트, 곡 구성, 멤버들의 연주, 객원 뮤지션들의 유감없는 능력 발휘 등 앨범은 모든 요소가 준수했다. 심지어 음반 커버까지 멋있다. 여기에 훌륭한 녹음이 각 노래들이 지닌 스토리와 특유의 분위기, 신선한 음향효과를 입체적으로 전달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엔지니어를 담당한 Alan Parsons는 이 앨범으로 주가가 껑충 뛰었다. "그래미 어워드"의 "최우수 엔지니어드 앨범 비 클래식" 부문 후보에 오른 것으로 그쳤지만 이후 The Hollies, Ambrosia, Al Stewart 등과 작업하며 활동량을 늘려 갔다. [The Dark Side Of The Moon]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무려 741주 동안 머무를 수 있었던 것도 콘솔이 좋은 기능을 한 덕분이다.

금발이 너무해
2016년 1월 세상을 떠난 영국 뮤지션 David Bowie의 유품이 그해 6월 경매에 나왔다. 하지만 이를 유품이라고 칭해야 하는지 다소 애매하다. 물건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분인 머리카락이기 때문이다. 1983년 [Let's Dance] 앨범을 냈을 즈음에 했던 금빛 머리카락이 무려 18,750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천 2백만 원에 달하는 액수에 낙찰됐다.


최근 배우 이재윤이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이소룡의 머리카락을 경매로 구입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보여 준 머리카락처럼 경매에 나온 David Bowie의 금발도 수십 가닥에 지나지 않는다. 어림잡아서 100가닥이라고 치면 머리카락 하나에 22만 원이나 하는 것. 탈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서러움을 안기는 현실이다. 누구는 정말 없어서 못 파는데…, 금발이 정말 "금(金)"발일 줄이야.

경매장에서까지 고통받는 그녀
David Bowie의 머리카락과 Prince가 생전에 자주 사용했던 옐로 클라우드(Yellow Cloud) 전기기타(우리 돈 약 1억 6천만 원에 낙찰됐다.)가 경매에 오른 날 Whitney Houston의 유품도 경매장 한편을 차지했다. 영화 "보디가드"(The Bodyguard)에서 입었던 드레스, 이런저런 장신구, 농구선수 Michael Jordan과 찍은 사진 등 그녀를 추억할 수 있는 유품이 여럿 마련됐다. 때문에 많은 팬이 경매장에 몰렸다.


의미 있는 이벤트는 1986년에 받은 "에미 어워드" 트로피 때문에 갑자기 중단됐다. 시상식을 주관하는 "텔레비전 과학 아카데미" 측이 경매 회사를 고소한 것이다. "텔레비전 과학 아카데미"는 수상자가 사망했을 경우 트로피를 "에미 어워드"에 반환해야 한다며 경매 불가를 주장했다. 법적인 조치로 경매는 없던 일이 돼 버렸다.

이 일은 Whitney Houston을 더욱 안쓰럽게 보이도록 한다. 사망하기 전에도 남편과의 불화, 약물중독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뒤에도 태클이 들어오니 인생이 무척 기구하게 느껴진다.

스타의 죽음은 나의 돈벌이
작년 크리스마스에 세상을 떠난 George Michael의 레인지 로버 차량이 지난달 이베이 경매에 나왔다. 판매자는 2년 전 George Michael에게서 직접 차량을 구매했다면서 구입 이후 내내 창고에 뒀고 약간의 스크래치만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 차량은 명백히 팝 역사의 한 조각이고 George Michael 격동의 시대의 일부."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의 소개에서 "중고나라" 이용자뿐만 아니라 외국도 이렇게 감성마케팅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솔깃해질 만하다. George Michael은 분명히 팝 음악의 대단한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차량은 그가 힘들었던 시간을 상징하는 것이 맞다. 2010년 그는 마약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던 중에 북런던 헴스테드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사진관 스내피 스냅스(Sanppy Snaps) 지점에 돌진하는 사고를 냈다. 이 일로 인해 그는 두 달 동안 철창신세를 졌으며 5년 동안 운전이 금지되는 처분을 받았다.


이 불상사 탓에 "이 차를 몰게 되면 George Michael처럼 교통사고를 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 입찰자도 있을 듯하다. 왠지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George Michael의 저주" 편으로 나올 것만 같은 막연하게 불길한 느낌이랄까?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배경을 보유했음에도 차는 결국 팔렸다. 낙찰가는 65,900파운드. 우리 돈으로 9천 2백만 원이 넘는 큰 액수다.

차를 구매한 사람은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사기당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차량은 2002년 생산된 모델로, 주행거리는 약 12만 킬로미터였다. 이 정도 스펙의 레인지 로버는 현재 약 6천 파운드에서 비싸면 8천 파운드에 육박하는 가격에 거래된다고 한다. 8천 파운드에 산다고 했을 경우 우리 돈으로 1,100만 원이 약간 넘는다. 유명 가수의 소유물이었다는 사항이 원가의 여덟 배에 달하는 프리미엄을 이끌어 낸 것이다. 스타 가수와 중고 거래를 트고 싶게 만드는 사건이다.

경매도 나름대로 흥미로워요
우리나라에 경매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있었다. 우리나라에! 내 엄마가 알고 보니 내 엄마가 아니었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알고 봤더니 피를 나눈 형제였다는 괴이하고 썩어 빠진 설정의 드라마가 만연한 우리나라에서 경매를 소재로 한 참신한 작품이 나온 적이 있다.


MBC "옥션하우스"가 그것으로, 2007년 9월부터 12월까지 방송됐다. 미술품 경매가 중심 소재이다 보니 관련 용어나 상식도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스릴러 성격도 어느 정도 포함된 덕분에 흥미진진했다. 대한민국 최초로 시즌제 드라마를 의도했으나 시청률이 그리 높지 않아서 다시 볼 수 없었다.

인기 드라마가 아니라서 사운드트랙 역시 빛을 보지 못했다. 스코어가 메인타이틀일 뿐 특정 노래를 계속해서 민 것도 아니었기에 히트는 애초에 불가능했다. 하지만 포스티노가 작사, 작곡한 'I Can Fly', "파스타" 이후 OST 전문 밴드로 등극하게 되는 에브리 싱글 데이의 'Wonder', 베니의 'Happy 2 Smile' 등 마음을 가볍게 해 주는 노래들이 마련돼 듣는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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