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25주년을 기념하며 원고의 나열

25년 전 3월 23일 이후 우리 대중음악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랩을 장착한 댄스음악이 주류에 솟구쳤고 남성 3인조 댄스 그룹이 쏟아져 나왔다. 방송에서 선보이는 춤에는 그럴듯한 이름이 붙어야 했다. 성공을 거둔 팀은 어느 정도 활동을 치른 뒤에 휴식에 들어가는 풍조가 일었다. 팝송을 즐겨 듣던 음악팬들이 대거 가요로 넘어왔다. 정규 앨범에 서곡을 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 이후로 일련의 현상이 나타났다.

정확하게는 1992년 4월 11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MBC "특종 TV 연예"를 통해 두 번째 방송을 탄 뒤부터 생겨난 일들이다. 이날 심사위원을 맡은 선배 음악인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공연에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감수성은 기성세대와 전혀 다르게 반응했다. 10대들에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무대는 눈과 귀를 사로잡는 문화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방송이 나가고 월요일이 됐을 때 학생들의 화두는 온통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위대한 첫걸음 [난 알아요]
학교의 풍경은 난리도 아니었다. 좀 논다 싶은 아이들은 하나같이 '난 알아요'의 핵심 동작인 "회오리 춤"을 연마하는 데 매진했다. 쉬는 시간만 되면 교실 뒤에 삼삼오오 모여 춤을 췄다. 복도에서도, 강당에서도 서태지와 아이들 따라 하기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연일 이어졌다. 이 기이한 현상은 그해 전국 중, 고등학교 수학여행의 장기자랑을 '난 알아요'로 물들이는 더욱 기이하고 참혹한 결과를 만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력은 춤에 그치지 않았다. 깔끔하면서도 역동적인 반주, 리드미컬한 우리말 래핑을 앞세운 '난 알아요' 외에 한국적인 정서를 유지한 R&B의 폼을 제시한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서정성으로 소녀 음악팬들을 매혹한 팝 '이제는' 등 음악이 기본적으로 훌륭했다. 공연장의 환경을 연출해 생동감을 추가한 신스팝 '내 모든 것', Heavy D & The Boyz의 'We Got Our Own Thang'을 샘플로 써서 힙합의 느낌도 갖춘 'Rock 'N Roll Dance' 또한 앨범이 다채로움과 견고함을 뽐내는 데에 한몫했다.


라이브 앨범, 리믹스의 촉매 [Taiji Boys Live & Techno Mix]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 8월에 콘서트를 개최한다. 데뷔한 지 불과 5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인이 콘서트를 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정식 레퍼토리는 인트로와 아우트로, '난 알아요'의 영어 버전을 빼면 일곱 곡이었다. 그럼에도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공연을 치렀다. 이들의 인기가 정말 엄청났음을 이 사실로 실감할 수 있다. 공연장의 열기는 그해 11월에 출시한 [Taiji Boys Live & Techno Mix]에 고스란히 담겼다.

앨범은 리믹스 버전을 실어 신선함도 제공했다. 당시 인기 장르였던 테크노를 도입해 '환상 속의 그대'를 두 가지 모습으로 다르게 꾸몄다. 방송 활동으로 이미 들려준 '환상 속의 그대 Part III'는 그가 우리 전통음악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넌지시 일러 줬다. 그런가 하면 '이 밤이 깊어 가지만 (Extended Dance Mix)'로는 원곡이 희미하게 지니고 있던 뉴 잭 스윙, 힙합 소울의 기운을 한층 유려하고 강하게 표현했다.

1990년대 들어 나미, 이현우 등이 리믹스 앨범을 발표해 왔다. 하지만 그들의 활동은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방송 활동에서 선보인 리믹스 버전과 이 앨범을 통해 댄스음악을 하는 가수들 사이에서 리믹스가 유행하게 된다.


퓨전과 다채로움의 향연 [하여가]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3년 6월 약 반년 동안 찍어 뒀던 쉼표를 지우면서 가요계에 복귀한다. 대개 재충전의 시간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이들의 칩거는 전과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한 충실한 준비기였다. 춤 연습만 열심히 해서 나타나는 요즘 대다수 아이돌 가수의 휴식과는 완전히 격이 다르다.

서태지는 '난 알아요'의 간주에 들인 묵직한 전기기타 연주로 본인의 음악적 바탕은 록과 헤비메탈임을 시사했다. 또한 '환상 속의 그대' 리믹스 버전을 통해 국악에 대한 흥미도 표출했다. 2집 타이틀곡 '하여가'는 그 두 가지를 소화한 결과물이다. 헤비메탈의 골조에 '태평소 능게'를 삽입해 록과 국악의 퓨전이라는 신선한 작업을 행했다. 거기에다 전과 마찬가지로 랩도 넣어 랩 메탈을 시도했다.

진취적인 퓨전이 돋보였지만 '하여가'에는 결점이 하나 있었다. 간주의 전기기타 솔로 연주가 미국 스래시 메탈 밴드 Testament의 1987년 노래 'First Strike Is Deadly'와 완전히 똑같다는 사실이다. '난 알아요'가 독일 댄스 그룹 Milli Vanilli의 1989년 히트곡 'Girl You Know It's True'를 과하게 모방했다는 점과 더불어 그룹의 역사에 늘 따라붙는 얼룩이 됐다.

그럼에도 실망스러움은 크지 않았다. 팝 발라드('너에게'), 일렉트로닉 댄스음악('수시아'), 뉴 잭 스윙('죽음의 늪'), 90년대 댄스음악의 문법을 구비한 피아노 록('우리들만의 추억') 등 즐길 노래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서태지와 아이들을 연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노래들로 충분히 설명된다.


록으로의 완전한 회귀 [발해를 꿈꾸며]
서태지는 1, 2집에서 국지적으로 드러냈던 록, 헤비메탈을 향한 애정을 3집에서 전면적으로 표했다. 인트로부터 '발해를 꿈꾸며', '교실 이데아', '지킬박사와 하이드' 등에 이르기까지 헤비메탈, 얼터너티브 록, 펑크 록의 인자가 명료하게 나타난다. 사운드는 전보다 강했지만 노래들의 선율은 귀에 빠르게 익을 만큼 여전히 미끈했다. 수록곡들은 서태지가 부단히 다양한 장르를 찾는 탐험가이자 뛰어난 멜로디 메이커임을 선전했다.

그룹의 또 다른 특징인 사회성을 띤 노랫말도 지속됐다. '발해를 꿈꾸며'에서는 통일문제를 환기했고, '교실 이데아'로는 학생들의 편에서 제도교육을 비판했다. 특히 '교실 이데아'의 후렴("됐어. 됐어. 이젠 그런 가르침은 됐어.")은 매일 입시 압박에 시달리는 수험생들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여겨졌다. 노래는 H.O.T.의 '전사의 후예 (폭력시대)', 젝스키스의 '학원별곡' 같이 아이돌 그룹들이 학교생활을 주제로 한 노래를 발표하는 데 주요 동기가 되기도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환상 속의 그대'(실행 없이 꿈만 꾸는 이를 향한 직언), '죽음의 늪'(약물중독에 대한 경고) 등으로 사회성을 조금씩 표출해 왔다. 3집도 분량만 따지면 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통일과 교육이 예나 지금이나 워낙 중대한 문제이기에 사회적 반향이 더 컸다.


여러모로 가장 뜨거웠던 순간 [Come Back Home]
또다시 표절 시비가 불거졌다. 4집 타이틀곡 'Come Back Home'이 미국 힙합 그룹 Cypress Hill의 노래와 유사하다는 주장이 음악팬들 사이에서 나왔다. 'Come Back Home'은 베이스를 리드 악기로 쓴다는 점과 드럼 톤을 강조한 사운드 때문에 Cypress Hill이 1993년에 출시한 [Black Sunday] 일부 수록곡들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무엇보다도 서태지가 Cypress Hill의 멤버 B-Real 특유의 코맹맹이 목소리를 따라 해서 표절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논란은 그저 논란이었을 뿐 그룹의 활동에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Come Back Home'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거나 가정사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위로하는 메시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여러 가출 청소년이 이 노래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표절로 말미암은 소란이 있었지만 음악적인 면은 두말할 나위 없이 수려했다. 록과 트로트를 섞은 'Yo! Taiji',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가사를 비프 음으로 바꿔 화제가 된 얼터너티브 록 넘버 '필승', 배금주의에 물든 사회를 비판한 힙합 곡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이제는'과 '너에게'를 혼합한 곡을 Kenny G가 해석한 듯한 팝 발라드 'Good Bye' 등 앨범은 전작들과 다름없이 다양함을 과시했다.

수록곡 중 '시대유감(時代遺憾)'이 일으킨 파장도 대단했다. 노래는 체제 전복을 꾀하는 가사 때문에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수정 지시를 받았다. 이에 수긍할 수 없었던 서태지는 원래 지은 가사를 들어내고 연주곡으로 수록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들은 공연윤리위원회에 집단적으로 항의하게 된다. 이러한 팬들의 활동은 음반사전심의제도가 폐지되는 데에 적잖은 역할을 했다.


그리울 수밖에 없는 존재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6년 1월 해체를 알리며 4년 동안의 짧지만 굵은 여정을 마무리했다. 해체 소식이 전해지자 팬들은 오열을 금치 못했다. 방송국들의 9시 뉴스도 그룹의 은퇴를 대대적으로 다뤘다. 그만큼 서태지와 아이들의 인기와 영향력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상당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가수들의 패션, 세련된 뮤직비디오 제작, 시각효과를 강조한 공연 등 여러 방면에서 혁신을 이끌어 냈다. 또한 성인 취향의 팝, 발라드가 지배하는 주류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댄스음악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무겁고 건전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화려한 댄스음악이 판을 치고 있지만 유치한 표현한 난무하는 상황이기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749&startIndex=0


덧글

  • 파란 콜라 2017/03/31 01:40 #

    서태지와 아이들 첫방송이 생각나네요.쑥쓰럽지만 자신감있는 표정이 기억나네요
  • 한동윤 2017/03/31 11:14 #

    첫 방송을 본 사람은 잊을 수가 없을 거예요~ ( ㅜㅜ)b
  • 2017/03/31 11:2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3/31 11:2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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