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를 품은 뮤직비디오 원고의 나열

세계적인 음료 회사 펩시가 크게 망신을 당했다. 펩시는 이달 4일 새로운 광고를 선보였지만 네티즌들로부터 환영 대신 질타를 받았다. 민중의 시위를 가볍게 묘사한 시놉시스가 비판이 가해진 원인이었다. 펩시는 이튿날 SNS를 통해 공식 사과문을 올리고 광고 방영을 중단하겠다고 전했다. 이로써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광고에 출연한 미국의 패션모델 Kendall Jenner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꼴이 됐다.


광고를 더 살펴보자. 모델로서 화보 촬영을 하던 Kendall Jenner는 시위대의 행렬을 지켜보다 대열에 합류한다.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게 된 순간 그녀는 펩시 캔을 경찰에게 건넨다. 경찰이 그녀에게 받은 펩시를 마시자 시위대는 환호하고 그곳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밝아진다. 펩시의 청량감이 사람들 사이의 분쟁과 냉기류를 일거에 해소할 만큼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콘셉트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된 부분은 Kendall Jenner가 경찰에게 펩시 캔을 건네는 장면이다. 그녀의 모습은 2016년 7월 9일 미국 루이지애나주 배턴루지에서 있었던 시위 중 드레스를 입고 경찰에 맞선 흑인 여성 Ieshia Evans를 연상시킨다. 이 집회는 같은 달 5일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37세 흑인 청년 Alton Sterling을 추모하고 흑인들의 인권을 존중해 달라고 주장하는 자리였다. 때문에 많은 네티즌이 펩시 광고가 흑인 인권 운동의 중요성을 무시한 채 특정 이미지만 상업적으로 이용했다고 불쾌해했다.


흑인 인권 운동의 기수였던 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딸 Bernice King도 펩시 광고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광고가 나온 뒤 그녀는 자신의 SNS에 과거 아버지가 집회 중에 경찰과 대치하던 사진을 게시했다. 그녀는 사진과 함께 "아빠가 펩시의 힘을 알았더라면."(If only daddy would have known about the power of Pepsi.)이라는 말을 덧붙여 황당함을 표했다. 펩시는 흑인들에게 특히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게 됐다.

안타깝게도 펩시가 당분간 꿀 악몽은 그것이 다가 아니다. 이번 광고는 표절로도 잡음을 일으켰다. 탄산음료가 시위대와 경찰 간의 갈등을 없앤다는 설정이 영국의 일렉트로닉 듀오 The Chemical Brothers가 1999년에 낸 'Out Of Control'의 뮤직비디오와 유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가상의 탄산음료 "비바콜라"(Viva Cola)의 라벨은 빨간색이라서 자연스레 코카콜라가 연상된다. 이 사항은 펩시가 코카콜라를 도발하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품게 한다. 속내가 어찌 됐든 펩시의 광고가 실패작으로 기억되게 됐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중요한 사회 쟁점과 맞물리지 않았더라면 펩시도 표절에 대한 부분만 지적을 받으며 별다른 어려움 없이 광고를 방영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펩시 외에도 특정 뮤직비디오에 영감을 받았거나 주요 장면을 따라 한 광고는 제법 있다. 어떤 것은 패러디로 간주돼 비난을 모면하곤 한다.

2011년 3월 "벨기에노동총연합회"(General Federation Of Belgian Labour)와 벨기에의 정당 "다른사회당"(Socialistische Partij Anders)이 "국제 여성의 날"을 맞아 공개한 임금격차해소 캠페인 영상이 그중 하나다. 이 비디오는 2002년 전 세계 클럽을 강타한 이탈리아 디제이 Benny Benassi의 'Satisfaction' 뮤직비디오를 흉내 냈다.


뮤직비디오는 비키니, 탱크톱, 핫팬츠로 잘빠진 몸매를 드러낸 여성들이 드릴 등의 전동공구로 나무를 뚫거나 땅을 파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이는 모두 성행위에 대한 은유다. 반면에 2011년에 만들어진 캠페인 영상은 할머니들이 주인공으로, 'Satisfaction'에 맞춰 공구를 사용하는 모습으로 구성됐다. 노년 여성도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조용필이 출연한 맥콜 광고가 뮤직비디오를 대놓고 모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광고는 노르웨이의 팝 그룹 A-ha가 1984년에 발표해 85년과 86년에 큰 사랑을 받은 'Take On Me'의 뮤직비디오를 복제하다시피 했다.

A-ha의 뮤직비디오는 실제 촬영한 영상과 이를 바탕으로 그린 그림을 합성하는 로토스코핑(Rotoscoping) 기법으로 전 세계 음악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맥콜 광고도 이를 이용해 색다른 영상을 연출했다. 또한 광고는 현실 세계의 여자 주인공이 만화책의 남자 주인공을 따라 만화 안으로 들어가는 뮤직비디오의 설정도 베꼈다.


요즘 같았으면 한동안 많은 꾸중을 들었을 테지만 인터넷이 없던 때라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지 않았다. 여기에는 당시 조용필이 누린 어마어마한 인기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감독이 잘못이지 우리 오빠의 잘못은 아니니까.

MC 몽의 2005년 히트곡 '천하무적' 뮤직비디오도 광고를 패러디했다. 뮤직비디오는 MC 몽이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180도'를 부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때 옆에 있던 여자가 MC 몽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찌르자 또 다른 히트곡인 '그래도 남자니까'를 부른다. 얼마 뒤 여자가 다시 옆구리를 찌르니 본격적으로 '천하무적'을 부른다.


이 부분은 팬텍이 2004년 출시한 핸드폰 "스카이 IM-7700"의 광고를 흉내 낸 것이다. 광고에 출연한 김아중은 횡단보도에서 'Moon River'를 부른다. 이때 옆에 있던 한 남자가 김아중의 옆구리를 누르자 그녀는 Kylie Minogue의 'Can't Get You Out Of My Head'와 Morcheeba의 'In The Hands Of The Gods'를 부른다. 버튼 한 번 누르는 것으로 쉽게 곡을 변경할 수 있다는 "혁신 기술"을 부각하는 광고였다.

MC 몽의 뮤직비디오는 여기까지만 재미있었다. 이 뒤로 MC 몽이 터널을 걸어가며 차에 치이고 다시 일어나는 스토리는 영국 그룹 UNKLE이 1998년에 발표한 'Rabbit In Your Headlights'의 뮤직비디오와 완전히 똑같다. 3분 넘게 표절 쇼가 펼쳐진다. 결국 '천하무적'의 뮤직비디오는 창작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런가 하면 홈쇼핑광고(Infomercial)의 포맷을 뮤직비디오에 쓰는 경우도 있다. 다이나믹 듀오는 2007년에 낸 '출첵'에서 방송의 다양한 장면을 패러디했다. 두 멤버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린다. 이와 같은 설정에 의해 교육방송, 영화, 뉴스, 드라마 등에 이어 티셔츠를 판매하는 홈쇼핑광고까지 등장한다. 이때 노홍철이 쇼호스트 역할로 카메오 출연했다. 노래가 흐르지만 왠지 그의 수다가 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Armand Van Helden과 A-Trak이 결성한 디제이 슈퍼그룹 Duck Sauce는 뮤직비디오를 아예 홈쇼핑광고 콘셉트로 구성하기도 했다. 2014년 그룹은 미국 싱어송라이터 Melissa Manchester의 1985년 싱글 'Energy'를 리믹스해 'NRG'라는 제목으로 출시했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에서 두 멤버는 모든 것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의 젤 "NRG"를 판매한다. 황당하긴 하지만 이로써 자신들의 음악이 활력을 생성한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달했다.

최근에는 광고가 적극적으로 뮤직비디오에 침투하는 국면이 만들어지고 있다. 가수나 뮤직비디오 감독이 코믹함을 위해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기업이 노래와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하는 것. 공격적인 PPL, 혹은 일반 대중음악처럼 만든 시엠송이라고 볼 수 있다.

2014년 에쓰-오일과 울랄라세션이 공동으로 진행한 '내가 갈게'가 대표적이다.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멤버 박광선이 위험에 빠진 여자 친구를 구하러 간다는 스토리로 구성됐다. 자신을 필요로 할 때 언제든 달려가겠다는 가사를 부각하는 것이다.


때마침 박광선이 모는 차의 기름이 떨어져 박광선은 주유소에 들른다. 주요소 간판에는 에쓰-오일의 마스코트인 "구도일"(Good Oil)이 그려져 있다. 이곳에서 기름을 넣은 박광선은 악당을 물리칠 무기(주유총)까지 얻는다. 뮤직비디오를 통해 회사는 고객에게 중요한 순간에 든든한 힘이 돼 주겠다고 약속한다.


대웅제약은 2016년 인디 밴드 A'Zbus를 섭외해 의약품 "우루사"를 홍보하는 노래 '간 때문이야'를 선보였다. A'Zbus는 기존 시엠송의 멜로디를 바탕으로 새롭고 근사한 록 버전을 만들어 냈다. 많은 사람이 익히 아는 가사가 나오니 노래만으로 충분히 광고가 된다. 따라서 뮤직비디오를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었다. 뮤직비디오에는 밴드 멤버들과 "우루사" 하면 바로 연상되는 곰만 출연했다.

많은 사람에게 익숙한 광고를 뮤직비디오에 들이게 되면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광고 역시 유명한 뮤직비디오를 활용하면 한층 돋보일 수 있다. 외국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아이돌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PPL 협찬을 한다면 국제적인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협의가 제대로 이뤄진 패러디, 과하지 않은 간접광고라면 광고 속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 속 광고는 가수와 노래, 회사와 상품을 선전하는 데에 모두 유용한 수단이 될 듯하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828&startIndex=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