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특집] 어린 나이에 데뷔한 가수들 원고의 나열

대다수 소년, 소녀는 5월 5일 '어린이날 노래'를 부른다. 모름지기 어린이라면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고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을 외친다. 하지만 일찍부터 가수의 꿈을 갖고 보통 대중음악을 부르는 비범한 아이들도 있다. 최근에는 아이돌 시장이 확대되면서 어린 나이에 음악계의 발을 내딛는 경우가 더욱 늘어났다. 나이는 어리지만 어른 못지않은 재능으로 돋보였던 가수들을 헤아려 본다.


보이프렌드 | K팝스타의 대미를 장식한 무서운 10대
2012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진행된 두 번째 시즌에서 열한 살의 방예담이 준우승하긴 했지만 보이프렌드의 성적을 낙관적으로 예측한 이는 얼마 없을 듯하다. 일단 나이가 어렸으며, 이번 마지막 시즌에는 가수로 이미 데뷔한 프로페셔널과 다년간 연습생 생활을 해 온 실력자들이 많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올해로 열두 살이 된 동갑내기 김종섭, 박현진이 짝을 이룬 보이프렌드는 누가 봐도 언더도그였다.

하지만 이들은 분명히 뛰어난 재능과 끼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어린 나이에 매회 무대를 기획하고 춤과 노래를 동시에 소화하는 것은 특출한 소질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수백 명의 관객이 자리한 큰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고 큰 실수 없이 퍼포먼스를 펼친 것도 대단하다. 어느 정도 담금질의 시간을 거치면 프로페셔널 가수로 거듭날 수 있을 듯하다.


Kris Kross | 힙합 역사상 가장 위대한 꼬마들
힙합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데뷔 중 하나라고 해도 과찬이 아니다. 미국의 힙합 듀오 Kris Kross는 일단 어린 나이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데 성공했다. 데뷔 당시 이들은 만 13세밖에 되지 않았다. 연령에 맞게 가사는 또래의 정서와 보편적 경험담을 주로 표출했지만 래핑 실력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여기에 옷의 앞뒤를 뒤집어 입은 독보적인 패션은 그룹을 더욱 인상적으로 느껴지게끔 했다. 열아홉의 나이에 이들을 발굴하고 제작한 Jermaine Dupri의 혜안과 감각은 이렇게 일찍이 빛났다.

1992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밟은 'Jump'와 13위를 기록한 'Warm It Up' 덕에 Kris Kross는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이듬해 선보인 2집도 빌보드 싱글 차트 19위에 오른 'Alright'를 앞세워 1집에 준하는 판매량을 달성했다. 하지만 1집에 비해 확실히 반응은 뜨겁지 않았다. 단 1년 만에 그야말로 "폭풍 성장"을 하면서 귀여웠던 외모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 미지근한 성원의 이유 중 하나였다.

아이가 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임에도 데뷔 때의 이미지가 강했던 탓에 이들에게는 성숙이 오히려 약점이 됐다. 나이가 들면서 가사의 소재와 주제도 달라졌지만 많은 사람이 여전히 앳된 Kris Kross를 더 좋아했다. 본인들도 한계를 체감했는지 1996년 3집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멤버들은 로컬 신에서 제작자로 일하면서 간간이 근황을 전해 왔다. 언젠가 다시 한 팀으로 컴백하길 바라는 팬도 많았지만 2013년 Chris Kelly가 약물과다복용으로 사망하면서 Kris Kross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됐다.


i-13 | 남다른 규모로 뜨고 남다른 규모로 지다
2005년 'One More Time'으로 데뷔한 걸 그룹 i-13의 평균 나이는 15.6세였다. 반올림을 하면 중학교 3학년이니 그리 어리다고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멤버들 중 초등학생이 셋이나 있어서 어려 보인다는 첫인상이 들기에 충분했다. 2004년 '러브송'으로 큰 사랑을 받은 7공주에 이어 i-13의 초등학생 멤버들은 어린 나이에도 얼마든지 가수가 될 수 있다는 예시가 됐다.

i-13은 나이가 어리다는 사항보다 많은 멤버 수로 더 주목받았다. 자그마치 열세 명이다. 많은 멤버로 돋보이긴 했지만 동시에 멤버 수가 많은 것이 그룹의 활동을 저지하는 올무로 작용했다. 회사는 그룹의 원활한 이동을 위해 1억 5천만 원짜리 대형 버스를 구입했다. 여기까지는 고급 밴 하나 구입한 셈 친다지만 의상 제작비가 수백만 원, 식비가 한 끼에도 수십만 원이 깨지는 애로가 있었다. 수입과 지출의 차이를 좁히지 못했던 그룹은 단 한 장의 앨범을 내고 해체하고 만다.


량현량하 | 춤만큼은 대단했던 쌍둥이
박진영이 제작했다는 사실로 화제가 됐지만 그것이 지속력을 담보하지는 못했다. 가창력은 미숙했고, 노랫말은 대체로 또래만 공감할 내용이었다. 열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비보잉 실력을 과시했으나 이것도 잠깐이었다. 쌍둥이 듀오는 2000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을 끝으로 사실상 활동을 접었다.

영원히 가요계를 떠난 줄 알았던 형제는 2004년 고등학생이 돼서 컴백한다. 데뷔 때와는 확 달라진 모습으로 새 앨범을 냈지만 음악팬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 데에는 실패했다. 어느 정도 어른스럽고 정돈된 음악을 들려주긴 했으나 대중성과 작품성이 고르지 못했던 탓이다. 쌍둥이는 이 앨범을 끝으로 가수 생활을 중단했다. 오랫동안 무대에 서지 않았지만 량현량하는 2016년 2월 JTBC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에 출연해 녹슬지 않은 춤 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Dionne Bromfield | 21세기 솔뮤직의 여왕이 인정한 인재
Amy Winehouse가 이 소녀를 발굴한 이유는 명확했다. 1996년생 Dionne Bromfield는 떡잎부터 남다른, 전도유망한 절창이었다. 열세 살 때 출시한 데뷔 앨범 [Introducing Dionne Bromfield]를 통해 소녀는 시원한 가창을 유감없이 선보였다. 또한 원숙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어서 조금도 어설픈 느낌이 들지 않았다. 보컬이 워낙 능수능란하다 보니 솔뮤직, 스카, 레게 등 여러 장르를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었다.

리메이크 위주로 구성했던 데뷔 앨범과 달리 2011년에 낸 2집 [Good For The Soul]에서 Dionne Bromfield는 작곡에도 참여하며 음악가로서의 발전을 보여 줬다. 두어 번만 들으면 따라 부를 수 있을 쉬운 멜로디, 관현악기가 빚어내는 경쾌하고도 서정미 진한 반주, 노래를 살며시 받쳐 주는 스캣 코러스 등으로 앨범은 1960년대 R&B와 솔뮤직의 향취를 한껏 발산한다.

음악팬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과제만 남겨 둔 상태였지만 예상치 못한 비보가 Dionne Bromfield의 진로를 막았다. 대모인 Amy Winehouse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 2집을 출시한 지 3주 만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서 Dionne Bromfield는 활동을 거의 중단하다시피 했다. SNS를 통해 가끔씩 공연이나 작업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새 앨범에 대해서는 딱히 언급이 없는 상태다.


Aaliyah | 하늘이 시기한 미성의 R&B 공주
스물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Aaliyah는 많은 음악팬에게 성숙한 모습으로 기억된다. 데뷔 때부터 무르익은 노래 실력을 뽐냈기 때문이다. 1994년 출시된 데뷔 앨범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는 그녀가 열네 살 때 녹음했다. 그녀는 미성을 보유했음에도 안정감 있는 가창으로 유려함을 내보였다. 원체 톤이 고와서 가성을 구사할 때는 더욱 아름답게 들렸다.

수록곡 중 가장 먼저 녹음한 'Old School', 첫 번째 싱글 'Back & Forth', 도입부의 독창이 귀를 사로잡는 'No One Knows How To Love Me Quite Like You Do' 등 앨범에는 힙합 솔, 뉴 잭 스윙 같은 강한 비트를 띤 곡이 많았다. 그럼에도 부드러운 목소리 덕에 노래들은 괄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The Isley Brothers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At Your Best) You Are Love'는 비단결처럼 고운 음성이 날리는 매혹의 결정타다.

앨범이 출시된 뒤에 음반을 프로듀스한 R. Kelly와 열다섯 살의 Aaliyah가 불법 결혼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Aaliyah의 성공에는 흠이 되지 못했다. Timbaland를 프로듀서로 모신 두 번째 앨범도 히트를 이어 Aaliyah는 R&B의 새로운 공주로 자리매김했다. 2000년 스크린 데뷔작인 "로미오 머스트 다이"(Romeo Must Die)가 상업적으로 성공해 영화배우로서도 탄탄대로를 달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이듬해 뮤직비디오를 촬영하고 돌아가던 중 타고 있던 비행기가 추락하면서 이른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게 됐다.


Stevie Wonder | 열세 살에 빌보드 차트 정상을 차지한 천재
1950년생으로,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 중인 Stevie Wonder도 어린 나이에 음악계에 뛰어들었다. 1961년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The Miracles의 멤버 Ronnie White에게 발탁된 Stevie Wonder는 모타운 레코드의 사장 Berry Gordy Jr.의 마음에도 들어 일사천리로 계약을 맺는다. 얼마나 실력이 탁월했는지 모타운의 한 전속 프로듀서는 "저 아이 놀랄 만한 물건이야!"(That boy's a wonder!)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의 찬사는 Stevie Wonder라는 이름을 짓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Little Stevie Wonder라는 이름으로 1962년부터 음반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때 낸 노래들은 차트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이듬해 출시한 라이브 싱글 'Fingertips - Part 2'가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밟음으로써 더 많은 이에게 신동이란 찬사를 듣게 된다. 이후에 낸 싱글의 성적은 다소 부진했으나 1965년 'Uptight (Everything's Alright)'를 시작으로 다시 차트를 활보함으로써 Stevie Wonder는 의심할 여지없는 음악 천재임을 명쾌하게 증명했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4914&startIndex=0

덧글

  • 동사서독 2017/05/05 23:19 #

    잭슨 패밀리 시절 마이클 잭슨 생각이 나네요. 보아 데뷔 전후로 인터넷에 퍼졌던 괴루머들도 생각나구요. 동요와 애니메이션 주제가 분야에서 활동했던 정여진씨도 어린 나이에 대단했었죠.
  • 한동윤 2017/05/06 11:10 #

    마이클 잭슨은 목소리 빼고 가창력은 성인 못지않았죠. 잭슨 파이브 이름으로 달성했지만 스티비 원더가 세웠던 빌보드 싱글 차트 최연소 1위를 갈아치우기도 했고요ㅎㅎ 정여진 씨는 누군지 모르겠네요.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
  • 홍차도둑 2017/05/06 06:58 #

    량현량하는 한국사회를 뒤흔들어 놓은 뮤지션입니다. 지금도 그 영향은 유지되고 있지요.

    아 음악적 유산 말고 사회적 유산 말입니다
  • 한동윤 2017/05/06 11:11 #

    ㅎㅎ그때는 정말 신기한 일이었죠~
  • 홍차도둑 2017/05/06 12:03 #

    그 이후 청소년 알바시간의 제한 뿐 아니라 프로선수의 연령제한및 프로운동선수 훈련생들의 시간 제한및 출전제한이 있지요
  • 한동윤 2017/05/08 11:45 #

    말씀 듣고 나니 그랬던 게 생각이 나는 것도 같네요~ :)
  • 홍차도둑 2017/05/06 07:03 #

    스티비 원더...얼마전에 스캐닝 기술과 신시사이저 관련 글을 쓰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아주 원더한 분입니다. 이름부터가 원더합니다. 이분 원더한 분이라는 거에 이의 있냐능?" 하고 멘트를 달았었죠~!
  • 한동윤 2017/05/06 11:12 #

    맞아요. 정말 원더해서 원더가 붙었으니~ 위대한 분이죠! :)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