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이 무렵 신해철은 밴드 넥스트로 새로운 음악 여정에 오른다. 가수 데뷔의 구름판이 됐던 "MBC 대학가요제"에 밴드 무한궤도로 출전했으니 생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많은 이에게 의아하게 여겨질 만했다. 무한궤도 이후 발표한 두 장의 솔로 음반을 통해 인기 절정의 아이돌스타가 됐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충분히 잘나가고 있는 그가 기존 모습을 뒤로 하고 다른 방식을 취하겠다니 신기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신해철의 과감한 결정과 음악적 포부는 그룹 이름에서부터 드러났다. 그는 새롭고 실험적인 팀으로 애초에 그룹의 정체성을 확정하고 "New Experimental Team"의 머리글자를 모아 넥스트라는 이름을 지었다. 다소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긴 하나 강령 하나만큼은 선명히 한 셈이다. 음악팬들은 간판으로 암시한 신선함과 실험성에 기대감을 품었다.
콘셉트 앨범의 개시
데뷔 앨범 [Home]은 신해철이 그동안 해 온 표현과 록 밴드로의 변신이 적당히 조화를 이룬 자리였다. 솔로 2집 중 '나에게 쓰는 편지'로 들려줬던 힙 하우스에 프로그레시브 록의 성격을 주입한 '도시인', 팝과 록을 혼합해 말 그대로 팝 록의 외형을 갖춘 '외로움의 거리', 무한궤도의 '그대에게'와 마찬가지로 아레나 록의 풍모를 나타낸 '영원히' 등 다수의 수록곡이 팝, 댄스음악, 록을 절충한 구성을 내보였다. 변화를 행하지만 솔로 때의 스타일을 유지해 신해철의 팬들은 부담 없이 넥스트를 포용할 수 있었다.

노랫말에서는 신해철 특유의 깊은 사색이 이어졌다. '도시인'으로는 현대사회의 삭막함을 논하고, '외로움의 거리'에서는 인간이 떨쳐 낼 수 없는 고독을 곱씹는다. 세계 곳곳의 정보를 빠르게 전달받지만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하는 텔레비전의 역기능을 언급한 'Turn Off The T.V.', 나이 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의 입장을 비로소 이해하는 '아버지와 나 Part I'에서도 숙고가 읽힌다. 일련의 노래들을 통해 신해철은 앨범 타이틀이 내건 "가정"(Home)의 면면을 부감한다.
새롭고 실험적인 팀이라고 밝혔지만 신해철의 솔로 앨범들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도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현격한 차별화는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증조할머니의 무덤가에서'로 선보인 국악 퓨전은 신해철로서는 분명히 색다른 시도였다. 여기에 더해 하나의 주제를 정해 콘셉트 앨범으로 꾸민 것 또한 넥스트의 이후 앨범들에서 펼치는 통일성에 대한 전초전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강한 음악, 깊이 있는 가사로 심화한 사색
넥스트는 1994년에 발표한 2집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에서 데뷔 앨범과 다른 모습을 내비친다. 전작에서 드럼을 담당했던 이동규가 베이시스트로 포지션을 옮기고 새로운 드러머 이수용을 영입했다. 이동규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베이스드럼을 연주하기 어려워 1집에서 다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전자드럼을 연주했다. 이 때문에 1집에서는 록 음악의 질감이 덜 나타날 수밖에 없었지만 2집에서는 새 드러머의 합류로 그보다 더 강력한 사운드를 낼 수 있게 됐다.

후반부에 자리한 연주곡 'Life Manufacturing: 생명생산'은 테크노의 외형으로 이질감을 풍기지만 나머지 노래들은 프로그레시브 록('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포크 록('날아라 병아리'), 헤비메탈('이중인격자'), 펑크(Funk) 록('나는 남들과 다르다') 등 록으로 일관성을 띤다. 때문에 2집은 신해철이 넥스트로 들려줄 음악이 록임을 확실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수록곡 중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는 신해철의 뛰어난 음악성을 새삼 실감하는 곡이기도 하다. 신시사이저와 전기기타의 화합으로 장중함을 연출하는 가운데 어두운 톤의 브리지와 속도감 있는 전개를 번갈아 수행함으로써 귀를 뗄 수 없게끔 한다. 10분에 달하는 긴 길이임에도 결코 산만하지 않다. 곡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 역시 일품이다.
전작에 이어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에서도 신해철은 하나의 주제를 노래들에 녹여냈다. 제목에 드러냈듯 이번에는 "존재"에 관한 물음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사람이 아닌 진정한 나에 대한 탐구('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독립된 존재로서 추구하는 이상의 실현('The Dreamer'), 생명의 유한함에 대한 깨달음('날아라 병아리') 등 신해철은 청취자들과 함께 철학적 사색을 나눈다. 우리 대중음악에서 이렇게 묵직한 내용을 보유한 작품은 얼마 없다. 그래서 이 앨범은 더욱 고귀하게 느껴진다.
화려한 곡으로 세상을 돌아보다
넥스트는 2집을 낸 지 약 1년 반 만에 신작 [The Return Of N.EX.T Part 2: The World]를 출시한다. 40초가 조금 넘는 짤막한 연주곡('나는 쓰레기야 Part 2')과 리메이크 연주곡('Love Story')이 있긴 해도 전작보다 많은 노래를 수록한 앨범이었다. 이를 통해 신해철의 높은 창작열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조급함만 발동해서 허술하게 만든 앨범은 아니었다.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에 버금가는 웅장함을 뽐내는 프로그레시브 록('세계의 문'), 펑크 록('나는 쓰레기야 Part 1'), 하드록('Hope') 등 앨범은 다양한 스타일을 구비했다. 특히 테크노와 국악, 록을 혼합한 'Komerican Blues', 뉴 잭 스윙과 랩 록을 버무린 'Money'는 앨범이 뿜어내는 다채로움의 극단이었다.
일부 팬은 이 화려함을 "백화점식 구성"이라며 마뜩잖게 생각하기도 했다. '나른한 오후의 단상'은 클래식 기타 연주곡이고, '아가에게'에서는 아카펠라까지 하니 어수선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앨범이 다루는 것은 다름 아닌 "세상"이다. 앨범에 담긴 여러 장르는 세상의 이모저모를 부연하는 음악적 장치인 셈이다.
앨범 타이틀에 맞게 밴드의 수장이자 전담 작사가인 신해철은 세상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이리저리 옮겨 간다. 사람을 중심에 두지 않은 발전은 부질없다고 얘기하고('세계의 문'), 빠르게 서구화되는 한국 사회를 걱정하며('Komerican Blues'), 황금만능주의의 만연을 지적하기도 한다('Money'). 가사에 직접적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로는 당시 꾸준히 논란이 일었던 동성동본 금혼제도를 문제 삼았다. 이처럼 [The Return Of N.EX.T Part 2: The World] 역시 충만한 사회성으로 특별한 기운을 발산한다.
희소성과 음악적 성취를 획득한 애니메이션 OST
넥스트의 4집은 전작들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하나의 콘셉트를 설정하고 제작했다는 사항과 주요 어법이 록이라는 점은 이전에 낸 석 장의 음반들과 동일하다. 하지만 전작들과 달리 [Lazenca (A Space Rock Opera)]에는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들이지 않았다. 물론 특정 가사에 의미를 부여해 사회성, 정치성을 나타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대한 얘기를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다. 세상사에 대한 관찰이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번 음반은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이었기 때문이다.

신해철은 넥스트 4집을 1997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MBC에서 방송된 SF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사운드트랙으로 선보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작품의 스토리, 중심인물의 성격에 착안해 노랫말을 지었다. 전작들이 지녔던 주제만큼 현실에 밀착하거나 거창하지 않지만 공상과학에 토대를 두니 어쨌든 콘셉트 앨범인 것은 똑같다.
이 앨범은 기획과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빛난다.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을 프로그레시브 록을 위시한 대중성이 떨어지는 록으로 꾸민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서는 단연 최초로,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을 신해철과 넥스트가 이뤘다. 전작들에 비해 소리의 체구가 커지고 믹싱과 마스터링이 잘됐다는 점은 넥스트 멤버들의 음악적 성취로 남을 것이다.
새로운 넥스트의 출범, 그리고 추억 소환
1997년 [Lazenca (A Space Rock Opera)]를 끝으로 신해철은 밴드 해체를 선언했다. 이후 Monocrom, Wittgenstein 등의 사이드 프로젝트로 전자음악을 탐험한 신해철은 새 멤버들을 영입해 2004년 5집 [The Return Of N.EX.T Part III: 개한민국]을 출시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수록곡들 가사의 강도는 셌다. 이전에 발표한 노래들이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편이었다면 [개한민국]은 한국 사회의 병폐를 샅샅이 헤집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수준이었다. 부정부패와 지역주의, 부의 불균형 등 온갖 문제를 끄집어낸 '아! 개한민국', 무능한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아들아, 정치만은 하지 마',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두 명의 여중생이 압사당한 사건을 중심으로 미국의 무력 과시를 비판한 'Dear America' 등에서 거친 언어를 토해 냈다.
새 식구를 들인 넥스트는 음악적으로도 나름대로 새로웠다. 그동안 주되게 들려줬던 프로그레시브 록도 유지하는 가운데 뉴 메탈('Generation Crush'), 전자음악을 덧댄 헤비메탈('서울역'), 인더스트리얼 록('80s Series 01 Anarky In The Net') 등으로 음악 양식을 한층 확장했다. 또한 신해철은 저음 위주의 보컬을 행해 한 번 더 다른 모습을 강조했다. 어떻게 보면 넥스트와 Monocrom, Wittgenstein의 짬뽕 같았다.
2006년에는 [The Return Of N.EX.T Part 2: The World] 때 멤버 김세황, 이수용, 김영석을 다시 불러들이고 키보디스트를 추가해 리메이크 앨범 [ReGame?]을 발표한다. 기존 멤버들이 돌아오고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들이 재해석된 작품이기에 팬들로서는 당연히 반가웠을 테다. '눈동자', '인형의 기사'는 각각 채연, 먼데이 키즈가 객원 가수로 참여해 원곡과는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미완으로 끝난 마지막
넥스트는 또다시 멤버를 교체한 뒤 2008년 새 앨범 [666 Trilogy Part I]을 선보인다. 음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3부작으로 기획한 작품의 첫 번째 파트다. 노래들의 가사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룬다. 음악은 인더스트리얼 메탈('The Empire Of Hatred (증오의 제국)'), 스피드 메탈('개판 5분 전 만취 공중 해적단') 펑크(Funk) 록('Dance United') 등 헤비메탈, 록의 기조를 잇는 상태였다.

3부작의 큰 그림은 팬들의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지만 이 앨범의 두 번째 파트는 출시되지 않았다. 신해철은 이미 완성했지만 그저 내기 싫다고 이유를 밝혔다. 대신 신해철은 새 보컬리스트 이현섭을 영입해 2014년 신곡 'I Want It All (Demo 0.7)'을 발표하며 넥스트의 새로운 걸음을 예고한다. 안타깝게도 그해 10월 신해철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새로 구상한 밴드의 결과물은 만날 수 없게 됐다.
넥스트의 신작은 원년 멤버 정기송의 복귀, 뉴페이스들의 참여가 어떤 시너지를 낼지 궁금함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것은 으뜸가는 관건이 아니다. 밴드의 구심점은 두말할 필요 없이 신해철이다. 그가 넥스트라는 함선을 움직이는 엔진이자 활동을 결정하는 함장이기에 그가 사라진 넥스트는 어딘가에 정박해 있는 전설의 배에 지나지 않는다. 넥스트가 더는 과거와 같은 형태로 시원하게 거동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그동안 찬란한 역사를 쌓아 왔음은 자명하다. 넥스트의 데뷔 25주년을 아쉬운 마음을 담아 축하한다.

신해철의 과감한 결정과 음악적 포부는 그룹 이름에서부터 드러났다. 그는 새롭고 실험적인 팀으로 애초에 그룹의 정체성을 확정하고 "New Experimental Team"의 머리글자를 모아 넥스트라는 이름을 지었다. 다소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긴 하나 강령 하나만큼은 선명히 한 셈이다. 음악팬들은 간판으로 암시한 신선함과 실험성에 기대감을 품었다.
콘셉트 앨범의 개시
데뷔 앨범 [Home]은 신해철이 그동안 해 온 표현과 록 밴드로의 변신이 적당히 조화를 이룬 자리였다. 솔로 2집 중 '나에게 쓰는 편지'로 들려줬던 힙 하우스에 프로그레시브 록의 성격을 주입한 '도시인', 팝과 록을 혼합해 말 그대로 팝 록의 외형을 갖춘 '외로움의 거리', 무한궤도의 '그대에게'와 마찬가지로 아레나 록의 풍모를 나타낸 '영원히' 등 다수의 수록곡이 팝, 댄스음악, 록을 절충한 구성을 내보였다. 변화를 행하지만 솔로 때의 스타일을 유지해 신해철의 팬들은 부담 없이 넥스트를 포용할 수 있었다.

노랫말에서는 신해철 특유의 깊은 사색이 이어졌다. '도시인'으로는 현대사회의 삭막함을 논하고, '외로움의 거리'에서는 인간이 떨쳐 낼 수 없는 고독을 곱씹는다. 세계 곳곳의 정보를 빠르게 전달받지만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하는 텔레비전의 역기능을 언급한 'Turn Off The T.V.', 나이 드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의 입장을 비로소 이해하는 '아버지와 나 Part I'에서도 숙고가 읽힌다. 일련의 노래들을 통해 신해철은 앨범 타이틀이 내건 "가정"(Home)의 면면을 부감한다.
새롭고 실험적인 팀이라고 밝혔지만 신해철의 솔로 앨범들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이도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현격한 차별화는 이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증조할머니의 무덤가에서'로 선보인 국악 퓨전은 신해철로서는 분명히 색다른 시도였다. 여기에 더해 하나의 주제를 정해 콘셉트 앨범으로 꾸민 것 또한 넥스트의 이후 앨범들에서 펼치는 통일성에 대한 전초전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강한 음악, 깊이 있는 가사로 심화한 사색
넥스트는 1994년에 발표한 2집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에서 데뷔 앨범과 다른 모습을 내비친다. 전작에서 드럼을 담당했던 이동규가 베이시스트로 포지션을 옮기고 새로운 드러머 이수용을 영입했다. 이동규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베이스드럼을 연주하기 어려워 1집에서 다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전자드럼을 연주했다. 이 때문에 1집에서는 록 음악의 질감이 덜 나타날 수밖에 없었지만 2집에서는 새 드러머의 합류로 그보다 더 강력한 사운드를 낼 수 있게 됐다.

후반부에 자리한 연주곡 'Life Manufacturing: 생명생산'은 테크노의 외형으로 이질감을 풍기지만 나머지 노래들은 프로그레시브 록('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포크 록('날아라 병아리'), 헤비메탈('이중인격자'), 펑크(Funk) 록('나는 남들과 다르다') 등 록으로 일관성을 띤다. 때문에 2집은 신해철이 넥스트로 들려줄 음악이 록임을 확실히 선언하는 것이었다.
수록곡 중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는 신해철의 뛰어난 음악성을 새삼 실감하는 곡이기도 하다. 신시사이저와 전기기타의 화합으로 장중함을 연출하는 가운데 어두운 톤의 브리지와 속도감 있는 전개를 번갈아 수행함으로써 귀를 뗄 수 없게끔 한다. 10분에 달하는 긴 길이임에도 결코 산만하지 않다. 곡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보컬 역시 일품이다.
전작에 이어 [The Return Of N.EX.T Part 1: The Being]에서도 신해철은 하나의 주제를 노래들에 녹여냈다. 제목에 드러냈듯 이번에는 "존재"에 관한 물음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사람이 아닌 진정한 나에 대한 탐구('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독립된 존재로서 추구하는 이상의 실현('The Dreamer'), 생명의 유한함에 대한 깨달음('날아라 병아리') 등 신해철은 청취자들과 함께 철학적 사색을 나눈다. 우리 대중음악에서 이렇게 묵직한 내용을 보유한 작품은 얼마 없다. 그래서 이 앨범은 더욱 고귀하게 느껴진다.
화려한 곡으로 세상을 돌아보다
넥스트는 2집을 낸 지 약 1년 반 만에 신작 [The Return Of N.EX.T Part 2: The World]를 출시한다. 40초가 조금 넘는 짤막한 연주곡('나는 쓰레기야 Part 2')과 리메이크 연주곡('Love Story')이 있긴 해도 전작보다 많은 노래를 수록한 앨범이었다. 이를 통해 신해철의 높은 창작열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조급함만 발동해서 허술하게 만든 앨범은 아니었다.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에 버금가는 웅장함을 뽐내는 프로그레시브 록('세계의 문'), 펑크 록('나는 쓰레기야 Part 1'), 하드록('Hope') 등 앨범은 다양한 스타일을 구비했다. 특히 테크노와 국악, 록을 혼합한 'Komerican Blues', 뉴 잭 스윙과 랩 록을 버무린 'Money'는 앨범이 뿜어내는 다채로움의 극단이었다.
일부 팬은 이 화려함을 "백화점식 구성"이라며 마뜩잖게 생각하기도 했다. '나른한 오후의 단상'은 클래식 기타 연주곡이고, '아가에게'에서는 아카펠라까지 하니 어수선하게 느껴질 만도 하다. 하지만 이 앨범이 다루는 것은 다름 아닌 "세상"이다. 앨범에 담긴 여러 장르는 세상의 이모저모를 부연하는 음악적 장치인 셈이다.
앨범 타이틀에 맞게 밴드의 수장이자 전담 작사가인 신해철은 세상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이리저리 옮겨 간다. 사람을 중심에 두지 않은 발전은 부질없다고 얘기하고('세계의 문'), 빠르게 서구화되는 한국 사회를 걱정하며('Komerican Blues'), 황금만능주의의 만연을 지적하기도 한다('Money'). 가사에 직접적으로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하여'로는 당시 꾸준히 논란이 일었던 동성동본 금혼제도를 문제 삼았다. 이처럼 [The Return Of N.EX.T Part 2: The World] 역시 충만한 사회성으로 특별한 기운을 발산한다.
희소성과 음악적 성취를 획득한 애니메이션 OST
넥스트의 4집은 전작들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하나의 콘셉트를 설정하고 제작했다는 사항과 주요 어법이 록이라는 점은 이전에 낸 석 장의 음반들과 동일하다. 하지만 전작들과 달리 [Lazenca (A Space Rock Opera)]에는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들이지 않았다. 물론 특정 가사에 의미를 부여해 사회성, 정치성을 나타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대한 얘기를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다. 세상사에 대한 관찰이 빠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번 음반은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이었기 때문이다.

신해철은 넥스트 4집을 1997년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MBC에서 방송된 SF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사운드트랙으로 선보였다. 이러한 배경으로 작품의 스토리, 중심인물의 성격에 착안해 노랫말을 지었다. 전작들이 지녔던 주제만큼 현실에 밀착하거나 거창하지 않지만 공상과학에 토대를 두니 어쨌든 콘셉트 앨범인 것은 똑같다.
이 앨범은 기획과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빛난다. 애니메이션 사운드트랙을 프로그레시브 록을 위시한 대중성이 떨어지는 록으로 꾸민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내에서는 단연 최초로,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을 신해철과 넥스트가 이뤘다. 전작들에 비해 소리의 체구가 커지고 믹싱과 마스터링이 잘됐다는 점은 넥스트 멤버들의 음악적 성취로 남을 것이다.
새로운 넥스트의 출범, 그리고 추억 소환
1997년 [Lazenca (A Space Rock Opera)]를 끝으로 신해철은 밴드 해체를 선언했다. 이후 Monocrom, Wittgenstein 등의 사이드 프로젝트로 전자음악을 탐험한 신해철은 새 멤버들을 영입해 2004년 5집 [The Return Of N.EX.T Part III: 개한민국]을 출시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수록곡들 가사의 강도는 셌다. 이전에 발표한 노래들이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편이었다면 [개한민국]은 한국 사회의 병폐를 샅샅이 헤집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수준이었다. 부정부패와 지역주의, 부의 불균형 등 온갖 문제를 끄집어낸 '아! 개한민국', 무능한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아들아, 정치만은 하지 마',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두 명의 여중생이 압사당한 사건을 중심으로 미국의 무력 과시를 비판한 'Dear America' 등에서 거친 언어를 토해 냈다.
새 식구를 들인 넥스트는 음악적으로도 나름대로 새로웠다. 그동안 주되게 들려줬던 프로그레시브 록도 유지하는 가운데 뉴 메탈('Generation Crush'), 전자음악을 덧댄 헤비메탈('서울역'), 인더스트리얼 록('80s Series 01 Anarky In The Net') 등으로 음악 양식을 한층 확장했다. 또한 신해철은 저음 위주의 보컬을 행해 한 번 더 다른 모습을 강조했다. 어떻게 보면 넥스트와 Monocrom, Wittgenstein의 짬뽕 같았다.
2006년에는 [The Return Of N.EX.T Part 2: The World] 때 멤버 김세황, 이수용, 김영석을 다시 불러들이고 키보디스트를 추가해 리메이크 앨범 [ReGame?]을 발표한다. 기존 멤버들이 돌아오고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들이 재해석된 작품이기에 팬들로서는 당연히 반가웠을 테다. '눈동자', '인형의 기사'는 각각 채연, 먼데이 키즈가 객원 가수로 참여해 원곡과는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미완으로 끝난 마지막
넥스트는 또다시 멤버를 교체한 뒤 2008년 새 앨범 [666 Trilogy Part I]을 선보인다. 음반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3부작으로 기획한 작품의 첫 번째 파트다. 노래들의 가사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룬다. 음악은 인더스트리얼 메탈('The Empire Of Hatred (증오의 제국)'), 스피드 메탈('개판 5분 전 만취 공중 해적단') 펑크(Funk) 록('Dance United') 등 헤비메탈, 록의 기조를 잇는 상태였다.

3부작의 큰 그림은 팬들의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했지만 이 앨범의 두 번째 파트는 출시되지 않았다. 신해철은 이미 완성했지만 그저 내기 싫다고 이유를 밝혔다. 대신 신해철은 새 보컬리스트 이현섭을 영입해 2014년 신곡 'I Want It All (Demo 0.7)'을 발표하며 넥스트의 새로운 걸음을 예고한다. 안타깝게도 그해 10월 신해철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새로 구상한 밴드의 결과물은 만날 수 없게 됐다.
넥스트의 신작은 원년 멤버 정기송의 복귀, 뉴페이스들의 참여가 어떤 시너지를 낼지 궁금함을 자아냈다. 하지만 그것은 으뜸가는 관건이 아니다. 밴드의 구심점은 두말할 필요 없이 신해철이다. 그가 넥스트라는 함선을 움직이는 엔진이자 활동을 결정하는 함장이기에 그가 사라진 넥스트는 어딘가에 정박해 있는 전설의 배에 지나지 않는다. 넥스트가 더는 과거와 같은 형태로 시원하게 거동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래도 그동안 찬란한 역사를 쌓아 왔음은 자명하다. 넥스트의 데뷔 25주년을 아쉬운 마음을 담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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