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재한 거장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원고의 나열

웬만큼은 성공했다. 하지만 정말 "웬만큼"일 뿐이다. 힙합 그룹 Public Enemy는 경력에 비해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1987년 데뷔 앨범을 선보인 이래 이들은 현재까지 총 열네 편의 정규 음반을 냈다. 그중 단 석 장만 미국 내 음반 판매량 1백만 장을 넘겼다. 한참 후배인 Outkast, Eminem, Nelly 같은 래퍼들의 판매량과 비교하면 매우 초라한 성적이다.


싱글 실적도 보잘것없다. Public Enemy는 앨범마다 평균 서너 편의 싱글을 출시했다. 그중 1994년에 발표한 5집 [Muse Sick-n-Hour Mess Age] 수록곡 'Give It Up'만 빌보드 싱글 차트 33위를 기록해 히트곡 대열에 들었다. 하지만 외국 힙합 라디오 채널에서 이 노래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히트곡이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다. 이외에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 안에 진입한 노래는 1991년에 낸 'Can't Truss It'이 유일하다. Public Enemy는 사실상 히트곡이 없는 가수다.

숫자는 Public Enemy를 한없이 작아 보이도록 만든다. 하지만 이들의 위상은 판매량과 차트 순위로 규정되지 않는다. Public Enemy는 일관된 음악 노선으로 광채를 발한다. 시작부터 꾸준히 사회와 정치를 논함으로써 그룹은 힙합 신에서 그 어떤 래퍼보다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 잡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그들만의 스타일을 고수해 온 역사 또한 듬직한 인물로 여겨지게끔 한다.

확고한 지향과 뛰어난 음악성으로 빛났던 전성기
Public Enemy는 뉴욕 롱아일랜드의 한 대학에서 인연을 맺은 Chuck D와 Flavor Flav를 주축으로 결성됐다. 이들은 Run-D.M.C.처럼 세찬 사운드를 내면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룹을 계획했다. Chuck D는 1984년 그가 객원 래퍼로 참여했던 'Check Out The Radio'를 만든 프로덕션 팀 Spectrum City를 프로듀서로 섭외한다. Chuck D는 이들에게 The Bomb Squad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 같은 지역에서 활동하던 디제이 Terminator X를 불러들여 라인업을 완성했다.


1987년에 낸 데뷔 앨범 [Yo! Bum Rush The Show]는 가난, 폭력, 인종차별로 고통받는 빈민가 흑인들의 삶을 바라본 노랫말과 원기 넘치는 반주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 이듬해 발표한 2집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도 전작과 다름없이 노래들의 가사는 정치사회적으로 가득 충전된 상태였다. 여러 샘플의 정교한 조합으로 이룬 공격적인 비트는 Chuck D가 뱉는 가사에 힘을 실어 줬다. 한층 강고해진 음악은 2집을 명반 대열에 들게 했다.

2집에 너른 찬사가 쏟아진 덕에 Public Enemy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이후에 발표한 앨범들은 빌보드 앨범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성기는 딱 권불십년이었다. 1998년에 개봉한 Spike Lee 감독의 영화 "히 갓 게임"의 사운드트랙 [He Got Game] 뒤로는 빌보드 앨범 차트 100위 안에 진입한 작품이 없다. Public Enemy의 일대기를 간략히 정리하면 여기에서 마무리를 지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밴드의 자취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로고
Public Enemy는 독특한 로고를 제작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물품 운송용 대형 상자, 혹은 군용품에 많이 사용되는 스텐실 폰트로 그룹은 견고하고 당당한 이미지를 나타냈다. 여기에 표적을 조준하고 있는 십자선 그림을 통해 미국 사회의 흑인들을 향한 탄압을 형상화했다. 글자와 그림의 조합은 흑인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대우에 분연히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로고는 대학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한 Chuck D의 작품이다.


이들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로고를 만든 힙합 뮤지션은 거의 없었다. Run-D.M.C.가 1986년 'My Adidas'를 출시하면서 위아래로 굵직한 빨간색 선을 긋고 그 사이에 그룹 이름을 적는 로고를 선보인 것이 최초다. 하지만 Run-D.M.C.는 모든 음반에 이 로고를 새기지 않았다. 애초부터 로고를 확실히 정하고 활동한 힙합 뮤지션은 Public Enemy가 최초일 듯하다.

독보적인 군인 퍼포먼스
그룹의 또 다른 멤버 Professor Griff는 전역 후 "유니티 포스"(Unity Force)라는 파티 전문 보안 용역 회사를 차렸다. Spectrum City가 한번은 행사를 열 때 유니티 포스를 고용했고 이것이 인연이 돼 Chuck D는 그룹을 결성하면서 유니티 포스를 전담 경호원으로 섭외했다. 유니티 포스는 Public Enemy의 일원이 되면서 S1W(Security Of The First World의 약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됐다. S1W의 리더 Professor Griff는 "공보부 장관"(Minister Of Information)이라는 직함을 부여받았다.


사실 Chuck D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들에게 그룹의 경호 임무를 맡기면서 공연할 때에는 댄서로 부리는 것. S1W는 주로 검은색 군복을 입어 흑인들의 급진적 지위 향상 운동인 블랙 파워 정신을 시각화했다. 이들은 군인들의 도수동작, 또는 의장대를 흉내 낸 제식 퍼포먼스로 그룹의 공연에 열기를 더했다. 힙합 뮤지션 가운데 이처럼 특색 있는 댄서를 들인 이도 Public Enemy가 처음이었다.

흑인들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맞선 가사
Public Enemy는 노래로 흑인이 처한 불합리, 사회의 이런저런 문제에 항거했다. 'Louder Than A Bomb'으로는 사실을 날조하는 수사기관을 비판하며, 'Fight The Power'로는 인종차별에 분노하며 권력에 맞서 싸우자고 투쟁을 종용한다. 이 노래들이 수록된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은 "우리를 저지하려면 수백만 명이 필요할 거야."라며 제목으로 투쟁 의지를 내비치고 있었다.


1990년에 발표한 3집 [Fear Of A Black Planet] 중 '911 Is A Joke'에서는 유독 흑인들의 요청에만 늦게 반응하는 911을 조롱하고, 'Burn Hollywood Burn'에서는 흑인을 범죄 용의자, 집사나 하녀 역할로만 나타내는 할리우드 영화 풍토에 대해 일갈한다. 앨범 부클릿에서 Chcuk D는 흑인들이 단결할 때 강하게 설 수 있다면서 블랙 파워 정신을 되새기기도 했다. Public Enemy는 인종차별에 분노하고 민족성을 고취하는 노랫말을 계속해서 써 오고 있다.

귀를 잡아끄는 견고한 프로듀싱
그룹은 Spectrum City를 전신으로 하는 전담 프로덕션 팀 The Bomb Squad를 뒀다. Chuck D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 온 Hank Shocklee와 Keith Shocklee 형제가 중심이 된 이 팀은 농밀하면서 힘이 넘치는 사운드로 힙합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다.


The Bomb Squad는 보통 일고여덟 개, 많게는 열 개 이상의 샘플을 으깨 넣어 비트를 풍성하게 꾸몄다. 더러는 록, 헤비메탈의 일렉트릭 기타 리프를 가져와 강도를 키웠으며, 유명 인물의 연설이나 사람들의 함성 소리, 공연 실황을 넣어 현장감을 연출했다. 여기에 더해지는 Terminator X의 현란한 턴테이블 스크래칭은 곡을 더욱 공격적으로 느껴지게끔 했다.

분명한 특색 덕에 The Bomb Squad는 업계에서 유명해졌다. 이들은 Public Enemy 외에 3rd Bass의 [The Cactus Album], Bell Biv DeVoe의 [Poison], Ice Cube의 [AmeriKKKa's Most Wanted], Son Of Bazerk의 [Bazerk, Bazerk, Bazerk] 등 여러 음반에 참여했다.

The Bomb Squad는 "나이키"(Nike) 사장의 아들 Travis Knight(래퍼 예명 Chilly Tee)의 데뷔 앨범 [Get Off Mine]을 프로듀스하기도 했다. 백인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에 반감을 표했던 Public Enemy의 태도와 다른 활동이라서 의아했다. The Bomb Squad의 지향은 Public Enemy와 별개였던 것일까? 아니면 국제적 대기업의 사장 아들답게 당시 업계 평균보다 더 많은 보수를 제시해서 프로듀싱을 받아들였던 것일까? 이 내막은 아무도 모른다.

새 앨범으로 돌아온 노병
인기는 일찍이 시들었지만 Public Enemy는 여전히 건재하다. 그리고 성실하다. 그룹은 지난달 29일 열네 번째 정규 앨범 [Nothing Is Quick In The Desert]를 발표했다. 샘플을 다채롭게 구성해 굴곡을 주는 방식은 그대로다. 하지만 이번에는 록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한층 드센 사운드를 구현했다. Chuck D 특유의 묵직한 래핑도 변함없이 이어져 노래들은 박력이 넘친다.


밴드는 데뷔 3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신작을 무료로 들을 수 있게 했다. 그룹의 밴드캠프 페이지(https://publicenemy.bandcamp.com)에서 스트리밍과 무료 음원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 민망하고 죄송스럽게도 무슨 연유에서인지 7월 5일 현재 서비스가 불가능한 상태다. 조속히 서비스가 재개되길 소망한다.

* 퍼블릭 에너미는 아예 밴드캠프 계정을 삭제해 버렸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5182&startInde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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