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든 목표를 이룬다.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속담이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선조들은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문화와 각종 산업이 번창한 대도시에 가야 한다면서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구와 인프라가 밀집된 곳에서 생활하는 모든 이가 성공하는 것은 아님을 우리는 익히 안다. 좋지 않은 여건에서 지내도, 사람이 그리 많이 살지 않는 변두리 지방에 기거해도 언젠가 이름을 드날리는 사람이 꼭 있다. 뜨거운 열정과 심대한 노력은 처한 상황을 넘어선다.
영국의 프로듀서 무라 마사(Mura Masa)도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한 인물에 속한다. 1996년생으로 이제 약관을 넘긴 그는 프랑스 노르망디와 영국의 남단 사이 영국해협에 위치한 작은 섬 건지(Guernsey)에서 나고 자랐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 섬은 면적이 65제곱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크기가 비슷하다. 금정구의 구민 수는 2015년 기준 24만 6천여 명인데 반해 건지의 인구는 4분의 1 수준인 6만 3천 명 남짓하다. 풍광이 좋고 기후가 온화해서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지만 사람들의 왕래만 활발할 뿐 전혀 화려하지 않은 시골이다. 이런 곳에서 팝 음악의 대스타들과 함께 작업하는 뮤지션이 나왔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장하다! 건지가 배출한 천재 음악가 무라 마사!' 같은 플래카드가 걸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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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 마사는 실로폰이나 울림이 어느 정도 있는 전자음을 들여 청초한 느낌을 연출한다. 중독성 강한 스캣 코러스와 찰리 XCX의 통통 튀는 보컬이 매력적인 '1 Night'를 비롯해 'Sound of 2016'의 후보 중 하나였던 영국 싱어송라이터 네이오(NAO)의 습하면서 가는 톤이 곡을 묘하게 만드는 'Firefly', 개성 강한 스타일로 인디 음악 애호가들에게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 싱어송라이터 크리스틴 앤드 더 퀸스(Christine and the Queens)의 보컬이 울적한 기운을 보조하는 'Second 2 None', 무라 마사가 직접 노래를 부른 'Messy Love'가 그에 해당한다. 이 노래들은 대체로 베이스라인이 두텁고 신시사이저 루프가 강한 편임에도 맑은 사운드의 가미로 묵직함을 상쇄한다. 동시에 트로피컬 하우스 같은 이국적인 향취도 퍼뜨린다.
무라 마사는 일렉트로니카를 주메뉴로 선사하면서 다른 장르도 취합해 다채로움을 도모한다. 건조한 래핑과 감미로운 스캣이 대비돼 곡이 한층 재미있게 들리는 'Nuggets', 간헐적으로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긴장감을 자아내는 중에 관악기 프로그래밍이 깨끗한 느낌을 형성해 주는 'All Around the World' 등으로는 힙합을 들려준다. 지난해 말 'Aurelia'라는 노래로 인디 음악 마니아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영국 가수 톰 트립(Tom Tripp)이 참여한 'Helpline'이나 앰비언트와 일렉트로팝을 혼합한 'Blu'로는 록 음악의 성격을 함께 내보임으로써 자신의 뿌리가 록임을 주장하는 것 같다. 일본의 대중음악인 엔카를 기본으로 한 'give me the ground'와 제니퍼 로페스(Jennifer Lopez)의 2000년 히트곡 'Love Don't Cost a Thing'의 후렴이 연상되는 디스코 넘버 'Nothing Else!'는 예명에 대한 채무의식 때문인지 일본풍 멜로디를 탑재했다. (무라 마사는 [Soundtrack to a Death]의 'Suicide Blades', 'An Interlude' 같은 곡에서 일본어를 넣기도 했다.) 영국 뮤지션에게서 난데없이 일본의 향기가 흐르니 무척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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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
음반 해설지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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