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메탈의 일등 가객 체스터 베닝턴(Chester Bennington)을 추모하며 원고의 나열

새천년으로 나가는 길목의 팝 시장은 뉴 메탈로 뜨거웠다. 이쪽에 진을 친 사내들은 헤비메탈, 얼터너티브 록을 버무려 강성 사운드의 기틀을 마련했다. 여기에 날카로운 턴테이블 스크래칭과 묵직한 전자음을 더해 한층 세찬 기운을 풍겼다. 게릴라처럼 잽싸게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래핑, 사납게 포효하는 싱잉은 뉴 메탈의 특성을 부연했다. 이 맹렬함에 수많은 청춘이 환호하면서 뉴 메탈은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뉴 메탈의 역사적인 번영의 중심에는 Linkin Park가 있었다. 1990년대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결성된 이들은 'In The End', 'Somewhere I Belong', 'Numb'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배출함으로써 뉴 메탈이 주류에 안착하는 데에 지대한 공을 세운다. 그리고 밴드의 중앙에는 리드 싱어 Chester Bennington(체스터 베닝턴)이 자리했다. 그의 격정적인 보컬은 Linkin Park의 음악에 호소력을 더해 줬다. 그의 목소리는 밴드의 노래에 특별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늘 화끈한 소리를 내던 그가 오늘은 싸늘하게 다가왔다. 미국 시간으로 20일 자택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는 것이다. 난데없는 비보를 접한 음악팬들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음원사이트 등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Linkin Park의 얼굴, 나아가 뉴 메탈의 간판이기도 했던 Chester Bennington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가 지나온 궤적을 짚어 본다.

짧은 무명, 크나큰 인기
1976년 간호사 어머니와 경찰이었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Chester Bennington은 어린 시절부터 록 음악에 매료돼 뮤지션이 되기를 꿈꿨다. 선망하는 삶이 있었지만 그의 유년기는 그리 행복하지 못했다. 일곱 살에 알고 지내던 형으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하고, 열한 살 때에는 부모님이 이혼하는 등 쓰라린 경험이 이어졌다. 이 고통을 덜어 내기 위해 그는 10대 초반부터 술과 마약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낭떠러지까지 가진 않았다. 그는 그림을 그리거나 노랫말을 지음으로써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구했다. 음악에 대한 꿈도 놓치지 않은 그는 1993년 록 밴드 Grey Daze를 결성해 꼬마 때부터 바라던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밴드는 1994년과 1997년 각각 정규 앨범 [Wake Me]와 [...No Sun Today]를 선보였지만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밴드가 잘될 운명이 아님을 감지한 Chester Bennington은 1998년 밴드를 탈퇴하고 새로운 활동을 찾아 나선다.

과거의 인연을 끊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 1999년 Xero라는 밴드가 리드 싱어를 찾고 있었고, 오디션에 지원한 Chester Bennington은 합격 소식을 받았다. 멤버들은 랩을 담당하는 원년 멤버의 퍼포먼스와 Chester Bennington의 보컬이 이채로운 결과를 만들어 낼 것 같다면서 밴드의 이름을 Hybrid Theory로 바꾸기로 한다. 이들은 같은 해 동명의 데뷔 EP를 출시하며 음악계에 발을 내디뎠다.


데뷔 EP는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다른 음악은 메이저 레이블의 호감을 사는 빛나는 이력서가 됐다. Linkin Park로 다시 명패를 교체한 밴드는 2000년 정규 데뷔 앨범 [Hybrid Theory]를 발표한다. 수록곡 중 'In The End'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었고, 다른 수록곡 'Crawling', 'Papercut'은 영국 싱글 차트에서도 높은 순위에 올라 밴드의 이름이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했다. [Hybrid Theory]는 2005년 기준 미국 내 판매량 1천만 장을 돌파했을 만큼 대대적인 호응을 얻었다.

Linkin Park는 거듭 성공을 맛본다. 2003년 출시한 2집 [Meteora]에서는 'Somewhere I Belong', 'Numb', 'Breaking The Habit' 등이 히트한 데 이어 이듬해 Jay-Z와 합작한 EP [Collision Course]도 힙합과 뉴 메탈의 근사한 결합으로 음악팬과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 냈다. EP에서 싱글로 선보인 'Numb/Encore'는 2006년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랩/노래 컬래버레이션" 부문을 수상했다.

음악적 변신과 숙원을 이룬 바깥 활동
연이은 성공에 고무된 일부 멤버는 다른 활동에 다리를 놓기 시작한다. 래퍼 Mike Shinoda는 Fort Minor라는 이름으로 2005년 힙합 앨범을 출시했다. 턴테이블리스트이자 밴드의 뮤직비디오 감독을 맡아 온 Joe Hahn은 다른 뮤지션의 작품에 디제이로 참여하면서 2005년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 Dead By Sunrise와 이들의 데뷔 앨범 >


Chester Bennington도 사이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는 2005년 캘리포니아주에서 활동하는 일렉트로닉 록 밴드 Julien-K의 멤버들과 함께 새로운 밴드 Dead By Sunrise를 조직했다. 멤버들은 이내 곡 제작에 돌입했으나 Chester Bennington이 Linkin Park로 활동을 병행하고 있던 탓에 앨범 출시는 즉각 이뤄지지 않았다. 2006년 발매를 계획한 앨범은 다음 해, 또 그 다음 해로 발매일이 미뤄졌다.

수년을 끌어온 Dead By Sunrise의 데뷔 앨범 [Out Of Ashes]는 2009년 10월이 돼서야 세상 빛을 봤다.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팬들로서는 기다린 보람을 느낄 만했다. Linkin Park와는 음악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Chester Bennington은 하드록, 펑크, 얼터너티브 록 위주로 앨범을 꾸며 스타일의 차별에 성공했다. 또한 템포가 느린 곡에서는 본연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그동안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부드러움도 어필했다. 하지만 애초에 한시적으로 활동하기로 결정한 프로젝트였기에 Dead By Sunrise는 1집을 끝으로 해산을 선언했다.

다시 Linkin Park로 활동을 이어 가던 Chester Bennington은 2013년 선배 밴드 Stone Temple Pilots로부터 호출을 받는다. 불화를 겪던 리드 싱어 Scott Weiland를 방출한 뒤 새로운 멤버로 Chester Bennington을 낙점한 것이다.


< Stone Temple Pilots >


그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일생일대의 행운으로 생각했을 듯하다. 록 음악에 빠진 어린 시절부터 동경해 온 이들이 바로 Stone Temple Pilots였기 때문이다. Chester Bennington은 주저하지 않고 선배들의 부름에 응해 Stone Temple Pilots의 멤버가 됐다. 요즘 유행하는 표현을 빌리면 진정한 "성덕"(성공한 덕후)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Chester Bennington은 2013년 5월에 열린 "KROQ 위니 로스트"(KROQ Weenie Roast) 페스티벌에서 Stone Temple Pilots로서 영광스러운 데뷔 무대를 가졌다. 같은 해 그는 20년이 넘는 밴드의 역사에서 첫 EP의 목소리를 담당하는 명예로운 업적도 달성했다. Chester Bennington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샤우팅으로 밴드의 음악에 전과 다른 색을 입혔다. Linkin Park 활동 때문에 2015년 Stone Temple Pilots와는 작별해야 했으나 그에게는 분명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울 그의 목소리
친정으로 돌아온 Chester Bennington은 올해 Linkin Park로서 7집 [One More Light]를 발표하면서 여전히 열정적인 모습을 나타냈다. 밴드의 음악 스타일은 세월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해 갔지만 그의 보컬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록에 기거하고 있었다. 음악계의 트렌드가 바뀌면서 데뷔 초반처럼 밴드의 노래가 세계 각국의 음악 차트를 활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목소리는 조금도 힘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아픔을 숨기고 있었다. 최근까지도 그는 약물과 술에 의존했다고 한다. 올해 5월 Soundgarden과 Audioslave로 활동했던 동료 뮤지션 Chris Cornell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상실감은 더 커졌다. 그의 장례식에서 추모의 노래를 불렀던 Chester Bennington은 Chris Cornell의 생일인 20일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인터넷에는 Chester Bennington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목소리는 Linkin Park의 노래로, 다른 뮤지션과 함께한 작품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거칠고 날카롭던 음성이 예전과 달리 앞으로는 슬프게 느껴질 듯하다. 그의 원기 넘치는 보컬이 벌써 그립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dex.htm?mstoryCateSeq=10

덧글

  • 나녹 2017/07/26 09:50 #

    포스팅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크리스 코넬이랑 그런 연관이 있었군요. 뮤직비디오 감독 마크 로마넥의 DVD를 하나 갖고 있는데 거기에 린킨파크의 Faint와 오디오 슬레이브의 Cochise가 나란히 실려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기묘한 우연이네요.
  • 한동윤 2017/07/27 17:05 #

    오, 그런 일도 있군요. 왠지 평행이론으로 썰 푸는 프로그램에서 꼭지 중 하나로 다룰 법한 트리비아네요 ㅠㅠ
  • 섹사 2017/07/27 01:05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한동윤 2017/07/27 17:05 #

    감사합니다 :)
  • 우굴루수 2017/07/28 11:40 # 삭제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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