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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디시 갬비노는 2013년 2집 [Because the Internet]을 발표하며 뮤지션으로서 세차게 내달렸다. 전작에 비해 한층 날렵해지고 더욱 역동적으로 변한 래핑을 통해 그는 음악에 대한 의욕을 적극적으로 나타냈다. 또한 앨범을 선보이면서 앨범 제목과 같은 주소의 웹사이트(becausetheinter.net)를 통해 수록곡들과 맞아떨어지는 극본도 따로 만들어 공개했다. 인터넷의 장단점을 논하는 내용에 맞게 음반을 인터넷 문법으로 꾸민 모습에서 그의 예술가로서 기질을 새삼 엿보게 된다. 싱글로 커트한 '3005'와 'Crawl'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각각 64위, 86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으나 앨범은 2015년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랩 앨범' 부문 후보에 오를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차일디시 갬비노는 확실히 성장 중이었다.
세 번째 정규 앨범 ["Awaken, My Love!"]는 음악가 커리어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번 관전 포인트는 변신이다. 시트콤 [커뮤니티]에서 인연을 맺은 뒤 2010년부터 음반 제작을 함께해 오고 있는 스웨덴 작곡가 루드비히 괴란손(Ludwig Göransson)과의 공동 작업 체제는 변함없다. 하지만 음악 스타일은 전과 완전히 다르다. 차일디시 갬비노는 힙합을 떼어 내고 사이키델릭 솔, 사이키델릭 록,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의 밴드 팔러먼트(Parliament), 펑카델릭(Funkadelic)이 들려줬던 특유의 질퍽한 펑크(funk)를 쏟아 낸다. 몇 년 전에 인터넷을 외쳤던 그가 예고도 없이 1960, 70년대로 돌아간 것이다. 과거의 사운드, 음악적 풍미를 재현하기 위해 이번에는 실제 연주 위주로 구성했다. 신선하고 맛깔스럽다.
2016년 11월에 선보인 리드 싱글 'Me and Your Mama'는 급변을 선언하는 충격적인 신호탄이었다. 초반에 합창단의 보컬이 흐를 때만 해도 그리 별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2분에 달하는 인트로를 지나면서 거친 기타 리프를 앞세워 묵직한 사운드를 펼친다. 차일디시 갬비노도 반주에 맞춰 괄괄하게 노래를 부른다. 얼마 뒤 홀가분한 톤으로 변주하면서 몽환적인 대기를 형성한다. 펑카델릭의 1971년 노래 'Can You Get to That'의 일부 멜로디를 차용한 'Have Some Love'도 중반 이후 리듬을 풍성하게 하고 코러스를 뒤로 살짝 빼는 구성으로 사이키델릭의 정취를 분사한다. 'Boogieman'은 까칠까칠한 기타, 이와 상반되는 맑은 멜로트론 연주, 공포영화를 연상시키는 사악한 웃음소리로 야릇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Zombies'는 솔뮤직과 사이키델릭 록을 결합한 골격으로 재차 이채로움을 과시한다. 실로 매력 만점 사이키델릭 판이다.
후반부는 앞에 비해 조금 가볍게 느껴진다. 'Riot'는 다이내믹한 리듬으로 경쾌함을 띠면서 음을 겹치는 코러스로 산뜻함도 동반한다. 앨범의 두 번째 싱글 'Redbone'은 선명한 멜로디의 루프, 적당히 통통 튀는 베이스 연주, 장난기가 밴 가성이 섞여 무척 앙증맞게 들린다. 평단으로부터 두루 호평을 받은 영화 [겟 아웃](Get Out)에 삽입되기도 한 'Redbone'은 뒤늦게 인기를 얻어 싱글로 출시된 지 8개월 만인 2017년 7월 빌보드 싱글 차트 14위에 올랐다. 'California'는 보코더로 윤색한 뭉툭한 보컬과 병에 입으로 바람을 불어 만드는 소리가 아기자기함을 연출하며, 'Stand Tall'은 신시사이저와 합창단의 코러스를 살살 뭉쳐 몽롱한 대기를 형성하지만 메인 보컬만큼은 까다롭지 않은 형태를 보인다. 초반보다는 무른 편이지만 붕 뜬 느낌을 끝까지 이어 감으로써 앨범은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이전 정규 음반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색다른 단절이다. 단순히 변화로 그친 것이 아니라 사운드까지 옹골차다. 약 반세기 전에 유행했던 장르를 멋스럽게, 때로는 자기만의 개성을 담아 신선하게 복원했다. 차일디시 갬비노는 또한 드럼을 비롯한 타악기 파트에 적극 참여해 연주자로서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켰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난 뒤 그 사람 사이에서 생겨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그린 전반적인 내용은 앨범에 현실감을 부여하며 감상에 잔재미를 보충한다. ["Awaken, My Love!"]에서 재능 많은 아티스트의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또 한 번 읽힌다. 차일디시 갬비노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20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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