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을 맞이한 매시업(mashup)의 역사와 결정적 순간들 원고의 나열

많은 사람이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무슨 노래가 이래?!"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각양각색의 목소리들과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몇 차례 바뀌는 반주는 생경함을 안겼다. 가수는 실재하지 않았으나 곳곳에서 수집한 육성을 통해 보통 노래처럼 들리도록 한 설계도 색달랐다. 하지만 노래가 품은 여러 음성과 리듬은 전에 나온 히트곡들에서 만날 수 있던 것들이라 동시에 낯익기도 했다. 영국 뮤지션 M|A|R|R|S의 'Pump Up The Volume'은 생소하면서도 친숙했다.


1987년 8월에 출시된 'Pump Up The Volume'은 이채로움 덕에 큰 관심을 받아 한 달 뒤 영국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곧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도 진출한 노래는 이듬해 1월 빌보드 싱글 차트 13위를 기록한다. 팝 시장의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두 국가에서 이룬 히트로 'Pump Up The Volume'을 완성한 신선한 작법이 대중음악계 전역에 전파되기에 이른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매시업"(Mashup)은 이렇게 화려한 인사를 건넸다.

평론가들은 'Pump Up The Volume'을 애시드 하우스로 규정했다. 애시드 하우스의 특징인 "롤랜드"(Roland)사의 TB-303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낸 어지러운 소리는 없었지만 보컬을 배제한 구성, 어둡고 몽롱한 기운을 풍긴다는 점에 근거해 그쪽 부류에 밀어 넣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노래를 힙합으로 정의했다. 곡의 구조가 힙합의 전통 문법인 샘플링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또 누구는 하우스 비트에 래핑 음원을 첨가한 사항으로 힙 하우스라고 칭하기도 했다. 복잡다단한 짜임은 'Pump Up The Volume'을 여러 갈래에 속하게 만들었다.

터무니없는 개념만 아니라면 어떻게 불러도 타당할 것이다. 애시드 하우스도 옳고, 힙합도 맞다. 하지만 이 명칭들보다 매시업이 노래를 더욱 포괄적으로 설명해 준다. 'Pump Up The Volume'에는 오리지널 버전을 기준으로 Eric B. & Rakim의 'I Know You Got Soul', Public Enemy의 'You're Gonna Get Yours', Trouble Funk의 'Pump Me Up', Kool & The Gang의 'Jungle Jazz' 등 자그마치 20편이 넘는 노래가 녹아들어 있다. 따라서 "(채소, 과일 등을) 부드럽게 으깨다."라는 뜻의 매시업이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

매시업의 개화와 성장, 정체
사실 M|A|R|R|S의 노래가 매시업의 시초는 아니다. 같은 해 1월에 발매된 영국 일렉트로닉 듀오 Coldcut의 데뷔 싱글 'Say Kids (What Time Is It)'도 James Brown의 'Funky Drummer', Kurtis Blow의 'Party Time', Incredible Bongo Band의 'Apache', Herman Kelly & Life의 'Dance To The Drummer's Beat' 등 무려 30편 이상의 곡을 융해해 만든 매시업 트랙이었다. 엄밀히 따지면 Coldcut이 이 분야의 기간병이었다.


혹자는 미국의 작곡가 Bill Buchanan과 음반 프로듀서 Dickie Goodman이 1956년에 발표한 'The Flying Saucer'를 매시업의 기원으로 보곤 한다. 두 개의 파트로 구성된 이 노래 역시 Elvis Presley의 'Heartbreak Hotel', Little Richard의 'Tutti Frutti', Chuck Berry의 'Maybellene' 등 그 시절 히트곡들의 일부분을 삽입해 제작했다. 아나운서, 리포터로 분한 Bill Buchanan과 Dickie Goodman은 대사를 주고받는 중에 그들이 논하는 주제나 상황에 맞는 노래 가사를 붙여 익살스러운 음악극을 연출했다. 'The Flying Saucer'는 과거 코미디언 박세민, 박성호 등이 했던 코너의 모델과도 같다.

그 이후에도 두 편 이상의 노래를 버무린 작품이 간간이 출시됐으나 매시업의 일등 전파자가 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세계 각국의 음악 차트에서 어깨를 당당히 편 M|A|R|R|S의 노래였다. 이후 영국에서는 Bomb The Bass의 'Beat Dis', S'Express의 'Theme From S-Express' 같은 매시업 노래가 출품돼 매시업을 유행처럼 느껴지게끔 했다. Coldcut도 1988년 또 다른 매시업 트랙 'Doctorin' The House'를 발표해 이 분위기에 숨결을 더했다. 'Doctorin' The House'와 같은 해 선보인 'Stop This Crazy Thing'은 여러 음원을 따와서 제조한 매시업이기도 하지만 객원 가수를 기용해 실제로 노래를 불렀다는 점에서 매시업이 아니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매시업은 큰 붐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Coldcut, M|A|R|R|S, Bomb The Bass, S'Express가 그 분야의 전부였다. 수가 적으니 화력을 키우기 어려웠다. 게다가 일렉트로닉 댄스음악 신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스타일들이 출현하니 뮤지션들이 그 형식만 고수하기란 애초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매시업은 결국 1980년대 후반에 짧게 빛나고 만 유물로 전락한다.

매시업의 2막, 그리고 명과 암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끝은 아니었다. 유행은 순환한다는 진리는 약 10년 뒤 매시업을 소생시킨다. 2000년대 들어 The Kleptones, Max Tannone, Girl Talk, The Legion Of Doom 같이 매시업을 전문으로 하는 뮤지션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이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인물은 미국 디제이 Girl Talk다. 2002년 데뷔해 현재까지 총 다섯 장의 정규 음반을 발표한 그는 한 노래 안에 평균 열 곡 이상, 많을 때에는 서른 편이 넘는 곡을 갈아 넣는다. 팝, 록, 힙합, R&B 등 원료로 사용되는 노래들의 장르도 다양하다. 이 때문에 다소 어수선하긴 하지만 한 노래 안에서 여러 장르를 접하니 확실히 재미는 있다.


<매시업 전문 뮤지션 걸 토크(Girl Talk)>


모든 사람이 Girl Talk의 음악을 흥미롭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반감을 느끼는 이도 존재한다. 그가 원작자, 혹은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은 채 음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저작권료도 지불하지 않는다. Girl Talk는 샘플 승인을 받지 않고 노래를 제작한다는 점으로 비판을 받곤 한다.

물론 Girl Talk를 옹호하는 이도 있다. 미국 저작권법은 "공정 이용"(Fair Use)이라는 명목으로 저작권이 등록된 작품도 교육, 비평, 연구, 패러디 등의 특수한 목적에서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Girl Talk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의 음악을 패러디로 봐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공정 이용에 해당되려면 원작의 사용 분량도 중요하다. Girl Talk의 노래에 쓰인 원작들의 분량은 대체로 길지 않다. 노래의 중심 반주로 사용된 어떤 오리지널은 30초 이상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다수 샘플이 10초 안에 소진된다. Girl Talk는 본인이 사용하는 원작들의 분량이 매우 짧기에 저작권자들에게 경제적 손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공정 이용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찬양과 협박이 동시에 따른 문제작의 등장
힙합 마니아들에게는 Danger Mouse가 2004년에 낸 [The Grey Album]이 대표적인 매시업 작품으로 익숙할 듯하다. 이 음반은 일명 "화이트 앨범"이라고 불리는 The Beatles의 [The Beatles] 수록곡들을 샘플로 쓴 비트에 Jay-Z의 [The Black Album]에서 뽑은 래핑을 합쳐 만든 노래들로 이뤄져 있다. 록의 전설과 힙합 거장을 한곳에 들인 기획, 각각의 색깔을 배합한 결과를 타이틀로 정한 센스 모두 탁월했다.


하지만 음반은 출시 당시 저작권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The Beatles의 앨범에 대한 출판권을 갖고 있던 "EMI 그룹"은 Danger Mouse를 상대로 음반의 유통과 판매를 중지할 것을 명령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The Beatles의 곡들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 있던 "소니/ATV 뮤직 퍼블리싱"도 Danger Mouse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쪽에서는 참신한 기획이라며 찬사를 받았던 [The Grey Album]은 한쪽에서는 도둑질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있었다.

다행히 Danger Mouse에게는 아군이 있었다. 네티즌들은 The Beatles의 곡들이 원곡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저작권자에게 막대한 경제적 타격을 안길 만한 분량이 아니라면서 Danger Mouse를 변호했다. 대형 음반사가 음반 시장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구조에 불만을 품어 온 한 단체는 음반사의 협박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The Grey Album]의 무료 다운로드를 확산하는 운동을 펼쳤다. 네티즌들의 격한 반발로 음반사들이 대응을 철회하면서 앨범은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한 상태로 남게 됐다.

무단 샘플링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 수밖에 없다. 한쪽은 원작자의 지적재산권 침해, 안일한 작곡 풍조 조장 등을 우려해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 다른 한쪽은 정식 절차를 밟아 사용료를 지급할 경우에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수밖에 없고, 특히 영세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에게는 창작열을 꺾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무단 샘플링을 탄력적으로 용인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입장 모두 일리는 있다. 문제는 두 입장을 모두 만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매시업은 이처럼 무단 샘플링에 관련한 서로 다른 견해 때문에 비주류 장르로 존재한다.


2008년 우리나라에서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매시업 작품이 나온 적 있다.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주제곡인 Santa Esmeralda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를 비롯해 DJ KOO의 'Let Me', 엄정화의 'D.I.S.C.O', 전진의 'Wa', 이효리의 'U-G-Girl' 등을 절묘하게 버무린 '빠삐놈'이 당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도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웠다면 정식으로 유통될 가능성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 알다시피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한국에서도 매시업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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