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을 타고 퍼지는 음악 원고의 나열

빠르게 주먹이 오간다. 발길질도 화려하게 주고받는다. 총알이 빗줄기를 이룬다. 간혹 미사일도 쑥쑥 지나가며 총탄과 함께 허공을 메운다. 여기저기서 화염이 춤을 춘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이 사람, 저 사람이 도약하듯 나동그라진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흔한 풍경이다.

이때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불쾌한 파열음, 폭발음 등이 배치돼 긴박감과 현장감을 배가한다. 사실적이거나 과장된 효과음은 치열한 격투와 위험천만한 교전을 한층 그럴싸하게 가공해 준다. 음향효과가 없으면 블록버스터도 보기에만 번지르르한 활동사진에 머물고 말 것이다.


영화음악은 그 이상의 기능을 맡는다. 곳곳에 흐르는 연주곡과 노래는 주인공의 성격을 암시하거나 특정 신의 분위기를 부연하며 영화를 더욱 재미있게 치장한다. 때로는 살벌한 액션을 로맨틱하게 만든다. 영화음악은 인물, 사건과 긴밀히 연계하면서 장면을 강조하기도 한다.

8월 말에 개봉한 "킬러의 보디가드"(The Hitman's Bodyguard), "아토믹 블론드"(Atomic Blonde)와 13일 스크린에 걸리는 "베이비 드라이버"(Baby Driver)는 음악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많은 노래가 등장한다. 이 작품들도 음악을 내세워 흥미를 더한다.

끈끈한 우정, 음악으로 끈끈하게 | 킬러의 보디가드
고객이 암살되면서 명예가 바닥에 떨어진 과거의 일류 보디가드가 킬러를 보호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는 "킬러의 보디가드"는 제작 초기부터 영화팬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출연하는 작품마다 크게 성공해 흥행 보증수표가 된 Samuel L. Jackson(킬러 다리우스 킨케이드 역)과 "데드풀"(Deadpool)을 통해 액션 스타로 급부상한 Ryan Reynolds(보디가드 마이클 브라이스 역)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됐기 때문이다. 1992년 영화 "보디가드"(The Bodyguard)를 패러디한 포스터도 웃음을 주며 기대감을 키웠다.


티저 포스터와의 연계성을 부각하고자 예고편에서는 "보디가드"의 주제곡이었던 Whitney Houston의 'I Will Always Love You'가 쓰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화는 그리 무겁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본편에서는 Willie Dixon의 'Sittin' And Cryin' The Blues', Bobby Bland의 'Ain't No Love In The Heart Of The City' 등의 블루스가 다수 나온다. 일련의 곡들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마이클 브라이스의 비참한 심경을 에둘러 나타낸다.

음악감독 Atli Orvarsson이 지은 스코어도 블루스, 컨트리 앤드 웨스턴 계열이 많은 편이다. 화기(火器) 사용, 처음에는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인정하게 되는 동료애에다 예스러운 음악을 추가해 "킬러의 보디가드"는 서부극 느낌을 진하게 발산한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에는 Samuel L. Jackson이 부른 블루스-컨트리 노래 'Nobody Gets Out Alive'가 흘러 마지막까지 서부영화의 정서를 쥐어짠다.


몇몇 노래는 주인공들의 사랑을 낭만적으로 꾸민다. Lionel Richie가 1983년에 낸 'Hello'는 다리우스 킨케이드가 부인 소니아(Salma Hayek 분)를 처음 만났을 때를 묘사하는 신에서 쓰이며, Foreigner가 1984년에 발표한 'I Want To Know What Love Is'는 마이클 브라이스가 그의 연인 어밀리아 루셀(Elodie Yung 분)을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설명할 때 사용됐다. 두 노래 모두 세월이 지나도 많은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러브 송이기에 이 노래들이 나오는 장면은 달콤함도 번진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된 노래들을 사랑의 테마로 쓴 것은 다리우스 킨케이드와 마이클 브라이스를 끈끈하게 이으려는 감독의 의도가 읽히는 부분이기도 하다. 'Hello'가 수록된 앨범의 제목이 [Can't Slow Down]이라는 사실 또한 감독의 그런 의도에 신빙성을 더해 준다. Foreigner가 가장 최근에 선보인 정규 앨범도 같은 제목인 [Can't Slow Down]이다.

푸짐한 코스 요리 | 아토믹 블론드
MI6 요원 로레인 브로튼(Charlize Theron 분)이 탈취된 스파이 명단을 찾아 나서는 내용의 "아토믹 블론드"는 베를린 장벽이 철거되던 해인 1989년을 배경으로 한다. 감독은 로레인 브로튼이 움직이는 중요한 순간마다 그해, 혹은 그 이전에 나온 노래들을 깔았다. 덕분에 영화는 1980년대의 클럽처럼 다가온다.


감이 좋은 음악팬이라면 제목을 접하고 음악의 적극적인 활용을 예상했을 듯하다. 'Atomic'이 미국 록 밴드 Blondie의 1980년 히트곡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포스터 속 로레인 브로튼의 살짝 컬이 들어간 금빛 단발머리는 Blondie의 프런트우먼 Debbie Harry를 꼭 닮았다. 거의 오마주 수준이다. (제목과 포스터로는 Blondie를 모방하고 있음에도 사운드트랙에는 그들의 노래를 선곡하지 않았다.)

1980년대를 수놓은 히트곡들이 진을 친다는 점은 그 시기를 경험한 음악팬들에게 분명히 기쁜 소식이다. 하지만 각각의 장면과 그때그때 등장하는 노래의 연관성은 그리 깊지 않아 보인다. 대체로 시대 배경과 문화적 분위기를 부각하는 용도에 머문다. 아니면 주요 인물들의 장소 이동을 부연하는 정도다. 양은 풍성하지만 스토리, 캐릭터와의 유기성은 떨어지는 점이 아쉽다.

액션을 위한 꽉 찬 선곡 | 베이비 드라이버
천재적인 운전 실력으로 강도들의 도주를 돕는 젊은 운전수 베이비(Ansel Elgort 분)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난 뒤 범죄 세계로부터 도주한다는 내용의 "베이비 드라이버"도 사운드트랙이 풍요로운 사실로 많은 음악팬의 관심을 샀다. 6월 중순에 출시된 OST 앨범에는 무려 30곡이 수록돼 있다.


극본도 담당한 감독 Edgar Wright는 베이비를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이명을 앓는 인물로 설정했다. 베이비는 이명 때문에 대부분 시간을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생활한다. 하루 종일 음악을 끼고 사니 극에 노래가 많이 삽입되는 것은 당연하다. 음악이 나오지 않는 장면에서는 미세하게 뭔가가 울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것은 베이비가 앓는 이명을 관객과 공유하는 것이다.

감독은 애초부터 내내 노래가 흐르는 영화를 계획하고 각본을 썼다. 노래가 영화의 중심 줄기인 셈이다. T. Rex의 'Debora', Beck의 'Debra' 등 여주인공 데보라(Lily James 분)를 위한 노래가 두 곡이나 되는 점만 봐도 선곡에 중점을 뒀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한 이유로 감독은 캐스팅 과정에서 배우들에게 대본과 사운드트랙 리스트를 함께 주며 음악을 들으면서 대본을 읽어 달라고 요청했다.


원래 극본을 쓰기 시작했을 때의 사운드트랙은 10곡이었다. 하지만 대본을 다듬으면서, 촬영 중에, 크랭크업 뒤 후반 작업을 거치면서 노래들이 계속 추가돼 지금의 양을 이뤘다. 일례로 Commodores의 1977년 히트곡 'Easy'는 Ansel Elgort가 오디션을 치를 때 이 노래를 잘 알고 있음을 확인하고 삽입한 것이다.

좋게 표현하면 호화롭지만 거칠게 얘기하자면 선곡에 두서와 일관성이 없다. 블루스, 펑크 록, 얼터너티브 록, R&B, 힙합 등 여러 장르가 뒤섞여 있는 탓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노래들의 박자를 맞춘 정교한 연출은 이 어수선함을 스펙터클함으로 승화한다. 비트와 액션이 쌍무를 춘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5486&startIndex=0

덧글

  • 펜타토닉 2017/09/20 02:58 # 답글

    개인적으로 베이비 아토믹 킬러 순으로 재미있게 봤습니다. 특히 베이비 드라이버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편을 보고나왔을때는 느낌과 상당히 비슷했는데 덕분에 택시 타기전에 일부러 한참을 걸으면서 음악을 듣다왔네요 ㅎㅎ
  • 한동윤 2017/09/20 11:27 #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도 유명한 노래가 많이 나와서 그때랑 비슷한 느낌을 받으셨나 봐요~
    긴 보행으로 이어질 만큼 진한 여운~
    베이비 드라이버를 보고 나면 바로 운전대를 잡는 건 자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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