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이 살아 있다는 호쾌한 간증. 팎(PAKK) [살풀이] 원고의 나열

록은 죽었다.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음원차트에서 록 밴드의 이름을 목격하는 것은 불가능한 이벤트에 가깝다. 어느 날 갑자기 상위권에 등장하는 밴드가 있다면 십중팔구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이다. 자력으로 많은 사람에게 이름을 알리는 밴드는 가뭄에 나는 콩보다 더 희소하다. 록은 사실상 죽었다.

엄밀히 말하면 록은 죽지 않았다. 록 음반들은 계속해서 출시된다. 아이돌 가수들을 향한 미디어의 심대한 편애가 거듭되고, 이에 따라 대중의 일반적 기호마저 치우치면서 록 음악 시장이 모진 불황을 겪고 있을 뿐이다. EBS [스페이스 공감]이나 KBS [올댓뮤직]이 일종의 사명감으로 록 뮤지션들을 소개해 오고 있지만 록 신은 침체기를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사정은 여전히 어려울지라도 묵묵히 자신의 음악을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타리스트 겸 보컬 김대인, 드러머 김태호, 베이스 연주자 박현석으로 이뤄진 팎(PAKK)의 정규 데뷔 앨범 [살풀이]는 근래 나온 록 음반들 가운데 단연 돋보인다. 풍속화를 흉내 낸 음반 커버부터 남달라 마주하는 순간 시선이 꽂힌다. 수록곡들 제목도 특이하다. 모두 한자어며, 들머리를 장식하는 '연적(硯滴)'과 말미에 위치한 '여적(餘滴)'을 제외한 나머지 아홉 편이 한 글자다. 눈에 보이는 요소들이 청취 욕구를 자극한다.

음악은 커버가 안긴 신선함만큼 근사하다. 악귀를 내쫓는 의식을 치르는 분위기로 긴박감을 조성하는 '연적(硯滴)' 뒤로 세찬 사운드가 펼쳐진다. 내내 괄괄한 톤을 유지하는 전기기타 연주는 전주, 반주, 간주, 후주 등에서 시시각각 리프를 변모함으로써 슬기롭고 흥미진진하게 역동성을 표출한다. 가끔 앞에 배치되기도 하는 베이스와 드럼 또한 넘치는 원기로 곡의 밀도를 높인다. 이와 더불어 완급이 확실한 진행은 노래에 박력과 속도감을 보충해 준다. 음악이 정말 실하다.


직접 앨범 소개 글을 작성한 김대인은 "이 앨범은 현세에 가득 차 있는 악한 기운들에 대한 살풀이다."라고 음반을 정의했다. 그의 설명처럼 [살풀이]를 채운 가사는 부당함과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 비열한 사람들에 대한 노기를 배고 있다. 화자는 술로 답답함과 시름을 달래기도 하고('곤(困)'), 약한 자를 도우면서('협(協)') 마뜩잖은 세상과 때로는 소극적으로, 때로는 적극적으로 융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자신보다 더 강하거나 독한 자에게 상처를 받고 무력감을 느낀다('겁(怯)'). 굵고 선명한 톤의 전기기타 연주는 쓰라린 세상에 토하는 울분을, 다른 악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흐릿하게 울림을 내는 보컬은 패배주의를 소리로 치환한 듯하다.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추상성까지 띤 노랫말은 앨범의 듣는 재미를 올린다. 화자의 심리와 상태를 직접적으로 서술한 부분은 듣는 이로 하여금 그의 기분에 빠르게 이입되도록 한다. 동시에 어렴풋한 표현을 통해 상상도 유도한다. 영어 가사 남발이 당연시되는 시대에 우리말로 가사를 지은 점도 감동적이다.

탄탄한 연주, 섬세하고 호화로운 구성이 날리는 타격에 기쁘게 나가떨어진다. 포스트 록과 헤비메탈, 그런지의 인자를 차지게 배합하는 중에 한국적 정서를 녹여낸 면모는 무척 훌륭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항은 [살풀이]를 더더욱 값지게 만든다. 우리 곁에 이렇게 멋진 록이 살아 있다.

2017.09.19ㅣ주간경향 124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