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혹적인 목소리의 여성 보컬리스트들 원고의 나열

아무 생각 없이 들었다가 순식간에 넋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 노래를 듣지 않은 이를 위해 귀띔한다. 마음의 준비를 어느 정도 하는 것이 좋다. 하늘하늘한 목소리가 귓가에 비수처럼 꽂힌다. 그리스 신화 속 세이렌이 따로 없다.


미국 신인 가수 Sabrina Claudio를 만날 청취자들에게 유경험자로서 이와 같은 주의는 불가결하다. 괜한 설레발이 아니다. 그녀의 음성은 무척 영롱해 기분 좋게 다가온다. 하지만 습기를 머금은 촉촉한 톤으로 듣는 이를 옴짝달싹 못 하게 끌어안는다. 순수함과 끈적끈적함이 공존해서 묘하다.

다소 무기력하게 천천히 박자를 밟으며 나아가는 반주는 Sabrina Claudio의 목소리와 상승효과를 이룬다. 이달 초 출시한 정규 데뷔 앨범 [About Time] 중 'Everlasting Love', 'Belong To You', 'Unravel Me' 같은 노래들에서 그녀의 음성이 내는 마력이 극대화된다. 특히 'Unravel Me'는 숨이 넘어갈 것처럼 흐느끼는 비브라토와 변조된 코러스, 터덜터덜한 느낌으로 진행되는 드럼이 모여 섹시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유튜브에서 2012년부터 Beyonce, Katy Perry 등 선배 뮤지션들의 노래를 커버하며 가수의 꿈에 도전해 온 이 새내기는 데뷔 앨범을 통해 자신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직 매체의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았으나 얼마 지나면 그녀를 소개하는 기사가 많아질 듯하다.

개성 있는 목소리로 강한 인상을 남긴 가수는 낱낱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Sabrina Claudio처럼 고혹적인 느낌을 풍긴 인물은 흔치 않다. 그녀가 몇몇 가수를 생각나게 한다. 강하지 않으면서도 요염한 보컬로 음악팬들을 사로잡은 이들을 헤아려 본다.


Jessie Ware | 여백과 부드러움의 완벽한 조화
가장 근래 나온 가수 중에는 영국 뮤지션 Jessie Ware가 그 군에 포함될 수 있겠다. 그녀의 목소리는 비단결처럼 곱다. 가끔 감정이 고조되는 부분에서는 성대를 조여 굵은 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드라운 톤을 유지한다.

Sabrina Claudio와 비교하면 Jessie Ware의 목소리는 더 강하다. 하지만 여백이 도드라지는 반주와 보컬에 에코를 가한 편집 덕분에 Jessie Ware의 노래들은 투명한 대기를 내보인다. 주된 음악적 틀이 신시사이저를 활용한 일렉트로니카임에도 맑은 느낌을 동반해서 전혀 억세게 들리지 않는다.

2014년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 [Tough Love] 중 'Keep On Lying'에서 그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약간 발랄한 루프 사이로 흐르는 온화한 보컬이 서정미를 발산하며, 살포시 추가되는 화음과 멀리 떨어져서 울리는 스캣 코러스가 공간감과 청아함을 증대한다. 여기에 바로크 팝의 요소도 가미돼 노래는 높은 격조를 뽐낸다.

Jessie Ware는 이달 3집 [Glasshouse]를 출시할 예정이다. 리드 싱글 'Midnight'에서 그녀는 은은한 백 코러스로 1980년대의 정취를 재현하면서 자신의 특색도 잘 나타냈다. 그런가 하면 홍보를 위해 공개한 'Egoista'에서는 라틴음악으로 색다른 모습을 보이니 이번 앨범에서 행할 변신도 기대된다.


Sade | 있어 보이는 요염함
시간을 옛날로 더 돌려 보면 고혹적으로 노래하는 가수의 계보에서 Sade를 발견할 수 있다. 1984년 'Smooth Operator'가 나왔을 때 많은 음악팬이 프런트우먼 Sade Adu의 가창에 녹다운되고 말았다. (인상이 얼마나 강했는지 "타임"(Time)지가 Sade를 커버로 다룰 정도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탁한 감이 있었으나 싱잉은 흐르는 물결처럼 유연했다. 대조되는 특징을 겸해서 그녀는 이채로운 관능미를 발산했다.

그녀의 존재감이 튀어 보일 수 있었던 데에는 밴드의 음악이 큰 역할을 했다. 컨템포러리 R&B, 솔뮤직을 바탕으로 삼는 가운데 스무드 재즈의 성분도 동반한 반주는 한없는 그윽함을 자아냈다. 타악기 파트의 절제된 리듬, 색소폰이 내는 단정하고 깊은 소리가 Sade Adu를 빛나게 한 숨은 공로자다.

2000년 이후 긴 휴지기를 보내다가 2010년 [Soldier Of Love]로 컴백한 Sade는 새 앨범에서도 흐릿한 아리따움을 부족함 없이 선사했다. 재즈의 터치는 많이 거둔 상태였으나 고급스러운 은은함은 그대로 자리했다. 당시 쉰을 넘긴 Sade Adu의 목소리도 여전히 훌륭했다. 다시금 언제 끝날지 모르는 동면에 들어간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Anita Baker | 밤에 특화된 여인
Sade와 같은 시기에 전성기를 보낸 미국 R&B 뮤지션 Anita Baker를 빼놓으면 섭섭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어떤 면에서는 중성적으로 들린다. 톤이 아주 굵진 않지만 그렇다고 가는 편도 결코 아니다. 성량이 풍부해서 둥그스름하게 다가오는데도 이상하게 섹시하게 들린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곡 때문일 듯하다. 그녀는 데뷔 때부터 서정미를 차분하게 분출하는 콰이어트 스톰(Quiet Storm)을 주로 들려줬다. 장르의 특성 때문에 Anita Baker의 노래들은 주로 밤에 전파를 탔다. 감성이 약동하는 시간대와 따스한 탄력을 지닌 음악의 만남은 그녀의 목소리를 더욱 농염하게 느껴지도록 했다. 이렇게 밤의 여왕이 탄생하게 됐다.


Enya | 깨끗하게, 맑게, 자신 있게
고혹적이라는 표현이 반드시 야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티 없이 순수한 음성이 때로는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뉴에이지 뮤지션 Enya가 특히 그렇다. 아니, "가장 그렇다."고 단정해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한때 국내에서 뉴에이지가 악마의 음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돌았을 때에도 그녀의 음악은 굳건히 인기를 유지했다. 이 사실만으로도 Enya의 목소리가 지닌 마력이 실감된다. 이렇게 표현하고 보니 악마의 음악이라는 말에 힘을 실어 준 것 같지만 그녀는 청초함으로 많은 사람을 홀렸다.

성량이 크지 않음에도 또랑또랑한 이미지가 확실한 덕에 Enya의 음성은 곡이 지닌 분위기를 배가하는 마법의 약 같은 기능을 하기도 했다. 웅장한 곡은 더욱 웅장하게 만들었고, 포근한 노래는 더욱 포근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목소리가 지닌 가장 큰 힘은 편안함일 것이다. 뉴에이지가 대중의 이목을 끌었던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으며, 주류 시장에서 눈에 보이는 흐름을 이룬 적도 없다. 하지만 Enya의 노래들은 꾸준히 사랑받는다. 그녀의 목소리가 매혹적임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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