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의 다양한 얼굴들 원고의 나열

리메이크는 언제나 사랑받는 스테디셀링 아이템이다. 짧은 터울을 두고 리메이크 음원이 계속해서 출시되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리메이크는 기존에 나와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는 친숙함으로, 원판을 바꾸는 윤색이 주는 신선함을 앞세워 음악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의 세월을 끌어안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리메이크가 갖는 태생적 장점에만 안주하면 빛을 보기 어렵다. 엄수해야 할 기본 법칙을 잘 이행하는 동시에 독창적인 수식을 들일 때 많은 이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음반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짐에 따라 미디어, 플랫폼 활용의 중요성도 높아지는 중이다. 최근 출시된 작품들을 통해 리메이크에 요구되는 중대한 조건과 다양한 면면을 살펴본다.

좋은 재해석은 변화와 유지의 조화
리메이크 작업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덕목은 변화와 유지다. 음악팬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는 원곡과 다른 새로운 멋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오리지널이 지닌 감성과 특징을 어느 정도 지켜야 한다. 신선함에 집중한 나머지 지나친 손질을 가하면 원곡을 좋아했던 대중은 이질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따라서 변화와 유지, 이 두 조건을 조화롭게 이루는 일이 리메이크의 핵심 관건이 된다.


지난 7월 중순 출시된 혼성 그룹 KARD의 데뷔 EP에 실린 '난 멈추지 않는다'는 그 조항을 잘 지킨 리메이크라고 할 수 있다. 아이돌 그룹의 조상이자 소속사의 대선배 잼이 1992년에 낸 노래를 커버한 KARD의 버전은 퓨처 베이스풍의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사운드를 내세워 원곡의 골격과 확실히 구분을 지었다. 여기에 여성 멤버 전소민과 전지우가 리드 싱어로 나선 덕에 원곡에는 없던 고혹적인 분위기가 생성됐다. BM과 J.Seph의 래핑은 트렌디한 힙합의 느낌도 구현했다.

외형은 원곡과 완전히 딴판이지만 어색하지 않다. 본래의 멜로디를 한순간도 바꿔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원곡의 포인트인 주제 테마를 사용한 스캣("나나나나나")도 원곡과 마찬가지로 도입부에 놓아 친근함을 제공한다. 또한 이를 간주의 코러스로 배치해 25년이라는 긴 간극을 좁히려고 노력했다. 현대의 감각과 본바탕을 잘 버무린 리메이크 수작이다.


이달 초에 소유가 선보인 '제주도의 푸른 밤'도 기본을 잘 지켰다. 원곡은 리듬이 수줍은 듯 아담한 소리를 내는 데 반해, 소유의 버전은 젊은 청취자의 기호를 겨냥해 드럼을 힙합풍으로 꾸미면서 소리도 키웠다. 어렴풋하게 들리는 왜곡된 보컬 샘플은 힙합의 느낌을 한 번 더 강조한다.

리메이크 버전에서 소유는 R&B 스타일의 창법을 구사한다. 단어의 마지막 음절을 끌거나 군데군데 비브라토를 넣음으로써 원곡과 차별을 기한다. 이런 식의 보컬이 가장 도드라지는 부분이 "낑깡 밭 일구고 감귤도 우리 둘이 가꿔 봐요." 중 "감귤"이다. 여기에서의 간드러지는 목소리는 망사스타킹을 신은 감귤이 다리를 꼬는 모습을 상상하게끔 한다. 세상에 이렇게 농염한 감귤은 처음이다. 과한 보컬이긴 해도 그 덕에 노래는 강조점을 갖게 됐다.

변화가 선명하지만 노래는 어쿠스틱 기타 리드로 원곡의 차분함을 재현한다. 도입부를 차지한 마크 트리(mark tree: 크기가 다른 차임 여러 개를 엮은 타악기) 소리는 원곡의 파도 소리를 대신해 청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오리지널의 한가한 느낌과 젊은 감각이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다채로운 선곡도 경쟁력
만약 싱글이 아닌 앨범 규격으로 리메이크를 낸다면 선곡도 중요하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노래를 택해야 음악팬들의 관심을 끌기에 좋다. 하지만 유명한 노래만 고르면 원곡의 인지도에 의존하는 활동으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덜 알려진 노래들은 원곡 가수 골수팬들의 환심을 사기에 좋다. 이러한 연유로 히트곡과 그렇지 않은 곡을 적당하게 배분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더 많은 이의 기호를 아우르는 점에서 여러 장르를 취합하는 일도 요구된다.


R&B 싱어송라이터 진보는 이 과제를 똑똑하게 수행한다. 2012년에 낸 [KRNB]는 소녀시대의 'Gee', 태양의 'I Need a Girl', 2NE1의 '아파' 등 젊은 음악팬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은 노래들을 실었다. 그러면서 듀스의 '알고 있었어', 솔리드의 '아끼지 못했던 사랑'과 'Yes or No'처럼 중년 R&B 마니아들만 기억할 법한 노래들도 수록해 비주류 취향도 만족했다.

15일 출시된 [KRNB2 Part.2]의 리드 싱글도 마니아 취향을 저격한다. 박재범을 객원 보컬로 초대한 '그대와 단 둘이서'는 김현식이 1986년에 발표한 3집 수록곡으로, 빛과 소금의 장기호가 작사, 작곡했다. 당시 어마어마한 인기를 얻었던 '비처럼 음악처럼'에 비해 '그대와 단 둘이서'를 향한 사람들의 애정은 그리 뜨겁지 않았다. 노래가 지닌 재즈-팝 퓨전 스타일이 당시 음악팬들의 일반적 정서와는 맞지 않았던 탓이다. 진보는 다소 묻혔던 노래를 선곡함으로써 재즈 퓨전을 좋아하는 이들과 R&B 애호가들의 구미를 돋운다.

지난 6월에 나온 [KRNB2 Part.1]도 폭넓은 선곡이 돋보였다. 트와이스의 'TT', 015B의 '아주 오래된 연인들', 윤수일의 '아파트', 김성재의 '말하자면' 등 시대, 장르, 원곡 가수의 성별을 가리지 않는 진취적인 선곡으로 다양성을 품었다. 진보가 추구하는 음악은 R&B지만 수록곡 리스트는 남녀노소 모든 이의 이목을 잡을 만하다. [KRNB2 Part.2]도 같은 위력을 나타낸다.

상부상조, 리메이크의 새로운 풍경
지난 8월 18일 레드 벨벳은 윤종신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환생'을 발표했다. 같은 날 장재인, 자이언트핑크, PERC%NT는 레드 벨벳을 커버한 'Dumb Dumb'을 선보였다. 두 노래는 각각 SM 엔터테인먼트의 주간 음원 발매 프로젝트인 'SM STATION'과 미스틱 엔터테인먼트의 비주기 신곡 출시 시리즈인 'LISTEN'의 이름을 걸고 나왔다. 두 회사가 짧지 않은 기간을 두고 진행해 온 기획의 결과물이 동일 출생신고를 했다.


두 노래가 같은 날 출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SM 엔터테인먼트와 미스틱 엔터테인먼트는 지난 6월부터 함께 음악을 만드는 것을 골자로 한 웹 예능 프로그램 [눈덩이 프로젝트]를 제작해 오고 있다. '환생'과 'Dumb Dumb'은 방송에서 각 회사에 소속된 가수의 노래를 바꿔 부르는 미션을 제시해 선정된 것이다.

두 노래는 그야말로 새롭게 탄생했다. 레드 벨벳의 버전은 멤버들의 하모니로 원곡이 지닌 1950, 60년대 리듬앤드블루스, 두왑의 성격을 지속하는 가운데 밝은 톤의 루프를 넣어 세지 않은 일렉트로팝의 면모를 내보인다. 'Dumb Dumb'은 힙합, 컨템포러리 R&B의 요소를 혼합해 원곡의 통통 튀는 느낌 대신 그루비한 자태를 뽐낸다. 둘 모두 보전과 참신한 터치가 고르게 행해졌다.

결과물도 준수하지만 [눈덩이 프로젝트]의 이번 활동은 리메이크의 또 다른 방향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두 회사가 리메이크 작업을 공유하는 일은 가요계에 흔치 않은 일이다. 이런 이벤트는 아티스트에게 색다른 경험의 장이며, 홍보 효과를 곱절로 늘리는 기회이기도 하다. 회사 또한 원곡과 원작자를 다시 알릴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회사 간의 상부상조가 리메이크의 신경향으로 부상할지도 모르겠다.

기대감으로 이어지는 검증된 작품
세월 한번 빠르다. 아이유의 리메이크 EP [꽃갈피]가 출시된 지 어느덧 3년 하고도 넉 달이 지났다. 아이유는 이후 몇 편의 싱글과 [CHAT-SHIRE], [Palette] 등 두 장의 비정규, 정규 앨범을 더 발표했다. 그동안 '소격동', '스물셋', '밤편지', '사랑이 잘' 등이 새롭게 인기를 얻었다.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고 또 다른 히트곡들이 나왔지만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는 아직도 [꽃갈피]에 담긴 노래들이 흐르고 있다. 특히 '나의 옛날이야기', '너의 의미'는 원곡보다 방송 노출 빈도가 더 높은 편이다. 이 사실은 리메이크가 잘됐음을 방증해 준다. 오리지널의 감성을 간수하면서 다수의 마음에 드는 해석을 이뤘기에 꾸준한 부름을 받는 것이다.

아이유는 이달 22일 [꽃갈피 둘] 출시에 앞서 13일 티저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어쿠스틱 기타와 만돌린, 바이올린이 어우러진 아일랜드 전통음악을 퍼뜨려 이국적인 느낌과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약간 어스름한 빛으로 색조를 낮춘 화면은 묘한 분위기에 힘을 실어 주면서 점점 공기가 차가워지는 가을의 모습도 전달한다. [꽃갈피 둘]이 [꽃갈피]와는 다른 감성 온도를 지닐 것에 대한 힌트 같다. 예고편에서 만난 특색 있는 음악만으로도 근사함에 대한 믿음이 간다.

전작은 차분한 팝을 중심 어법으로 삼으면서 라틴음악('꽃'), 재즈('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등으로 표현을 넓혀 가며 어느 정도 다양성도 내보였다. 이번에도 담백한 맛은 이어지겠지만 큰 흐름 안에서 어떤 변화를 보여 줄지 궁금하다. 드러난 것은 티저 영상뿐이지만 음악팬들의 [꽃갈피 둘]에 대한 기대감은 이미 크다. [꽃갈피]가 대중성과 완성도를 훌륭히 검증한 덕분이다.

2017/09
뮤즈몬 http://blog.naver.com/muzmon/221096909208

덧글

  • 이글루스 알리미 2017/11/07 08:10 #

    안녕하세요, 이글루스입니다.

    회원님의 소중한 포스팅이 11월 07일 줌(http://zum.com) 메인의 [허브줌 컬처] 영역에 게재되었습니다.

    줌 메인 게재를 축하드리며, 게재된 회원님의 포스팅을 확인해 보세요.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한동윤 2017/11/07 10:09 #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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