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ke [More Life], 래퍼 겸 싱어 드레이크의 색다른 기획 원고의 나열

장기는 많을수록 좋다. 하나만 잘하는 사람보다 두 가지 이상을 잘하는 사람이 언제나 더 돋보이는 법이다. 때문에 흑인음악 신에서는 래핑과 싱잉을 모두 능숙하게 해내는 뮤지션이 대체로 더 많은 음악팬에게 주목받는다. 퀸 라티파(Queen Latifah), 에버래스트(Everlast),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 로린 힐(Lauryn Hill) 같은 이들은 래퍼와 싱어 포지션을 넘나들며 힙합과 R&B 애호가들에게 두루 어필했다. 이 계보는 오늘날 키드 커디(Kid Cudi), 드레이크(Drake), 찬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 아제이어 라샤드(Isaiah Rashad) 등이 잇는다. 이들 역시 상당한 인기를 누림으로써 두 영역을 두루 소화하는 재능이 경력에 보탬이 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 중 캐나다 출신 드레이크의 존재감은 단연 두드러진다. 2010년 출시한 [Thank Me Later]부터 그가 현재까지 발표한 넉 장의 정규 음반은 전부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밟았다. 또한 넉 장 다 미국에서만 1백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거기에다가 앨범마다 세 편 이상의 히트곡을 배출했다. [Take Care]로는 '최우수 랩 앨범'을, 'Hotline Bling'으로는 '최우수 랩/노래 퍼포먼스'와 '최우수 랩 노래' 부문을 수상하는 등 그래미 어워드에서만 세 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이외에 다른 여러 유수의 시상식에서 무려 400개 이상의 상을 받았다. 일련의 엄청난 성과에는 전천후 보컬리스트 능력이 한몫 단단히 한다. 드레이크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래퍼 겸 싱어로 확고한 지위를 지키고 있다.

팝 음악의 톱스타 대열에 든 드레이크는 사실 가수가 아닌 배우로서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오브리 드레이크 그레이엄(Aubrey Drake Graham)이 본명인 그는 열다섯 살 때인 2001년 캐나다의 10대 드라마 [데거러시: 더 넥스트 제네레이션](Degrassi: The Next Generation)에서 농구 스타 '지미 브룩스'(Jimmy Brooks) 역을 맡았다. 드레이크는 가수로 데뷔하고 나서도 2009년까지 드라마 출연을 이어 갔다. 이후에도 [솔 푸드](Soul Food), [인스턴트 스타](Instant Star) 등 다수의 드라마와 텔레비전 영화에 출연하면서 적잖은 필모그래피를 작성했다.


하지만 내재된 끼와 열정은 음악으로 방향타를 돌리고 있었다. 드레이크는 2006년 자력으로 첫 믹스테이프 [Room for Improvement]를 발표하면서 래퍼로 데뷔한다. 이때는 대형 레이블에 소속된 상태도 아니었고 래퍼로서 눈에 띄는 경력을 다진 것 역시 아니었기에 앨범은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에 실망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레이블 OVO 사운드(October's Very Own Sound)를 설립하고 2007년 [Comeback Season], 2009년 [So Far Gone] 등의 믹스테이프를 출시하며 래퍼로서 이름을 알려 나갔다. 성실한 작품 활동은 도약대가 돼 [So Far Gone]에 실린 'Best I Ever Had'가 캐나다 차트 24위에 오른 데 이어 빌보드 싱글 차트 2위를 기록하는 영광을 맞이한다. 드레이크가 드디어 수면에 오른 순간이다.

드레이크는 2010년 'Over', 'Find Your Love', 'Miss Me', 'Fancy' 등 네 편의 히트곡을 배출한 첫 번째 정규 앨범 [Thank Me Later]로 힘차게 약진했다. 이듬해 낸 두 번째 앨범 [Take Care]도 'Headlines', 'Make Me Proud', 'Take Care' 등의 히트곡을 터뜨리며 성공한 덕에 드레이크의 인지도는 한층 상승한다. 2013년에 발표한 3집 [Nothing Was the Same] 또한 각각 빌보드 싱글 차트 6위와 4위를 기록한 'Started from the Bottom', 'Hold On, We're Going Home'에 힘입어 많은 인기를 얻었다. 4집 [Views]의 리드 싱글 'Hotline Bling'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에서 드레이크가 춘 춤이 네티즌들에 의해 수없이 패러디되면서 꾸준히 화제가 됐다. 이제는 노래를 냈다 하면 커다란 호응이 따라붙는 위치가 됐다.

힙합 신의 완연한 거물로 자리 잡은 드레이크가 이번에는 특이한 프로젝트를 들고 등장했다. 그는 신작 [More Life]를 '플레이리스트'(playlist)라는 용어로 규정했다. 정규 앨범도 아니고 믹스테이프에 속하는 작품도 아니다. 수록곡이 무척 많기에 EP라고 하기에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기존에 낸 노래들을 엮은 것도 아니라서 컴필레이션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일단 그가 정한 호칭대로 플레이리스트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는 플레이리스트가 메이저 정규 앨범들의 간극을 잇는 종합적 산출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앨범들의 가교로 정의 내리고 있지만 80분이 넘는 러닝타임과 10여 명의 객원 가수들을 확인하면 영락없는 정규 음반으로 느껴진다. 어떤 범주에 넣든 으리으리함을 뽐낸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앨범은 실로 풍성하고 화려하다. 보통의 힙합 외에도 다양한 장르가 넘실거린다. 두 번째 싱글로 낙점된 'Passionfruit'는 [Views]에서 리애나(Rihanna)와 함께한 'Too Good'을 연상시키는 캐리비언 리듬을 탑재해 청량감을 자아낸다. 이와 유사하게 'Madiba Riddim'은 트로피컬 하우스 형식으로, 'Blem'은 댄스홀 골격으로 이국적인 정취를 물씬 풍긴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세계적 디제이 블랙커피(Black Coffee)와 영국 방송 BBC의 유망주 선정 투표 'Sound of 2017'에서 4위에 뽑힌 영국 싱어송라이터 조자 스미스(Jorja Smith)가 참여한 'Get It Together'는 하우스 비트로 흥을 발산한다. 영국 래퍼 스켑타(Skepta)가 독주하는 'Skepta Interlude'는 그의 국적과 래핑 스타일 때문에 그라임의 톤이 강하게 느껴진다. 몇몇 장르는 [Views]에서 들려준 바 있기에 플레이리스트가 다른 앨범들의 음악적 가교가 될 것이라는 드레이크의 설명이 바로 이해된다.

본인의 특기를 살린 힙합, R&B도 잔뜩 구비돼 있다. 빌보드 싱글 차트 8위를 기록한 앨범의 리드 싱글 'Fake Love'는 차분하지만 선명한 루프를 보유한 비트에 마치 말을 조금 급하게 하는 듯한 래핑과 진득한 싱잉을 매치해 흡인력을 낸다. 세 번째 싱글로서 빌보드 싱글 차트 18위까지 오른 'Free Smoke'는 블루스, 가스펠의 색을 내는 도입부를 마친 뒤 트랩 비트의 힙합으로 변해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No Long Talk'와 'Gyalchester' 또한 트랩 외형을 내세워 어두운 대기를 조성하는 임무를 맡는다. 미니멀한 구성에 읊조리듯 노래하는 'Nothings Into Somethings', 제니퍼 로페스(Jennifer Lopez)의 1999년 히트곡 'If You Had My Love'를 차용한 후렴과 드레이크의 미성이 애틋함을 형성하는 'Teenage Fever'로는 요즘 유행하는 얼터너티브 R&B의 문법을 좇는다.

앨범에는 드레이크가 지금까지 해 온 스타일이 차곡차곡 들어서 있다. 힙합과 얼터너티브 R&B는 기본에, 전작에서 적극적으로 도입했던 자메이카 음악도 거듭 끌어들인다. 'Take Care'에서 했던 하우스도 본 앨범에서 더욱 또렷하게 나타난다. 그런가 하면 이전에 한 적 없던 그라임을 새롭게 들려주기도 한다. 이 사항들을 종합해 보면 플레이리스트가 어떤 앨범인지 대강 윤곽이 잡힌다. 본인 음악에 대한 중간 점검이며, 비주류 음악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를 자유롭게 모색해 보는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다음 앨범에서는 어떤 스타일을 들려줄지 살짝 귀띔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앨범은 이미 세 편의 빌보드 싱글 차트 히트곡을 배출해 상업적 성공도 누렸다.

앨범이 출시될 무렵 드레이크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일상의 사운드트랙이 될 만한 노래들의 모음집을 의도했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플레이리스트란 이런 것이다. 내가 나중에 종종 찾아 들으려고, 혹은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 구성한 목록이다. 드레이크는 그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골고루 모음으로써 자기만족을 취했고, 이 과정에서 이룬 다채로움으로 음악팬들의 다양한 기호까지 챙겼다. 객원 뮤지션을 때로는 노래의 주인공으로 앞세운 연출은 '다른 사람을 위한 플레이리스트'의 성격을 보강한다. [Views]를 낸 지 단 1년 만에 이렇게 독특하고 재미있으면서 호화롭기까지 한 앨범을 완성해서 더욱 놀랍다. 드레이크가 래핑, 싱잉의 재능에 기획력과 성실함까지 갖춘 인물임이 [More Life]를 통해 확실히 확인된다.

2017/04

덧글

  • mcdasa 2017/12/26 02:03 # 삭제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읽어 본 드레이크 관련 글 중에 가장 온당한 아티스트에 대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전 사람들의 평가가 이중적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켄드릭 라마가 좋은 곡을 들고 나오면 비트초이스가 탁월했다고 하지만,
    드레이크가 좋은 곡을 들고 나오면, 프로덕션이 좋다고들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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