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으로 야망을 품은 그룹들 원고의 나열

신인 가수들에게 이름은 무척 중요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많은 가수가 쏟아져 나오는 시장에서 다른 이들보다 돋보이기 위해서는 인상적인 이름이 필수다. 호기심을 자극할 만큼 참신하거나 독특해야 음악팬들의 눈에 들기가 수월하다. 이름은 첫인상에 필적한다.

어떤 가수들은 이름에 신선함을 나타내면서 본인들의 지향이나 포부를 새기기도 한다. 처음 봤을 때 파악하지 못했던 뜻을 알고 나면 이름뿐만 아니라 가수가 색다르게 느껴진다. 그렇게 이름에 원대한 계획을 실은 그룹들을 살펴본다.


TRCNG | 최고를 꿈꾸는 10대
이들의 이름을 보고 영국 신스팝 밴드 처치스(CHVRCHES)가 떠올랐다. 원래는 'churches'로 표기해야 하지만 독특하게 보이기 위해 'U'를 'V'로 바꿔서 적은 것처럼 TRCNG의 'C'도 'O'를 스타일리시하게 변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트롱'으로 발음해야 하나? 스트롱(strong)과 관련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TRCNG는 'Teen Rising Champion in a New Generation'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다. '새로운 세대에 부상하는 10대 챔피언이 되겠다.'는 포부를 함축한 작명이다. 이름에서 꿈틀대는 힘이 감지된다.

이름에 특정하게 10대를 명시한 이유는 열 명의 멤버 전원이 2000년 이후에 태어난 10대이기 때문이다. 평균 나이가 약 16세다. 이렇게 나이 어린 아이돌 그룹은 걸 그룹 아이써틴(i-13), 지피 베이직(GP Basic) 이후 오랜만에 마주한다. 그들에 이어 TRCNG도 파릇파릇한 아이돌 그룹 계보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이달 10일 출시한 데뷔 EP [NEW GENERATION]은 타이틀곡 'Spectrum'을 비롯해 'I'm the One', 'Don't Stop the Dancing' 등 날카로운 전자음을 장착한 노래들 덕분에 무척 강렬하게 다가온다. 나이는 어릴지라도 박력은 넘친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었던 듯하다. 그런가 하면 발라드 트랙 'My Very First Love'로는 달콤함도 충분히 나타낸다.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인 데다가 얼굴에 앳됨이 묻어나서 TRCNG는 또래 소녀들의 사랑을 듬뿍 받지 않을까 하다. 누나 팬들의 응원은 기본이다. 10대 챔피언은 따 놓은 당상이 아닐까?


JBJ | 그때그때 무궁무진한 이름
6인조 보이 밴드 JBJ도 이달 18일 데뷔한 따끈따끈한 신인이다. 이제 막 출발선에 섰지만 멤버들 모두 엠넷 <프로듀스 101> 두 번째 시즌에 출연한 덕에 프로그램을 챙겨 본 음악팬들에게는 익숙하다. 게다가 방송 막바지까지 생존하며 끼와 재능을 선전해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상태다.

이름 JBJ는 '그저 즐길 뿐.'이라는 뜻의 'Just Be Joyful'의 약자라고 한다. 재미있게도 영문자 이니셜을 한글로 바꾼 'ㅈㅂㅈ' 때문에 이들에게는 거듭 새로운 애칭이 붙고 있다. <프로듀스 101> 때의 활약을 보고 '정말(J) 바람직한(B) 조합(J)'이라는 수식이 생긴 것이 대표적이다. 9월부터 엠넷에서 방송되고 있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잘봐줘 JBJ>의 제목 역시 이들의 초성에서 비롯됐다.

데뷔 EP [Fantasy]에는 어두우면서도 웅장한 규모의 일렉트로팝('Fantasy'), 트랩과 전자음악의 성분을 혼합한 힙합('Say My Name'), 뉴 잭 스윙('오늘부터'), 리듬감이 어느 정도 있는 발라드('꿈을 꾼 듯') 등 다양한 스타일이 마련돼 있다. 다섯 곡뿐이지만 양식이 제각각이라 풍성하게 느껴진다.

이들의 이름 초성으로 만들 수 있는 별칭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그 특성처럼 음악으로도 다채로움을 뽐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ELRIS | 알고 나면 어마어마한 의미
철자를 확인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앨리스(Alice) 정도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은 'Excellent Lovely Rainbow Innocent Sister'의 이니셜을 합친 ELRIS다. 문법의 비약이 있긴 하지만 '훌륭하고, 사랑스럽고, 무지개처럼 순수한 소녀들'이라는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다.

ELRIS는 올해 발표한 두 편의 EP를 통해 이름에 담은 지향을 충실히 소화했다. 사랑에 빠진 소녀의 설레는 마음을 그림동화처럼 화사하게 풀어낸 가사와 사근사근한 멜로디가 만난 노래들은 사랑스럽고 순수한 느낌을 흡족하게 전달했다. 하지만 아직 히트곡이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ELRIS의 청순한 향기가 널리 퍼질 날이 곧 오기를 기대해 본다.


아이즈 | 한결같은 매력을 발산할게요
4인조 보이 밴드 아이즈(IZ)의 이름에는 강건한 다짐이 서려 있다. 알파벳 'I'는 숫자 '1'과 비슷한 모양 때문에 '처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했고, 'Z'는 알파벳 순서 그대로 '마지막'을 뜻한다. 이 둘을 합쳐 만든 이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치 않는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동시에 이름은 그룹의 인사법이기도 하다. 'eyes'와 발음이 같은 점에 착안해 아이즈는 "Open your eyes! 안녕하세요. 아이즈입니다!"라고 인사한다. 이 구호는 '아이즈만의 색으로 대중의 마음을 열겠다.'는 희망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름에 결심과 바람이 응축돼 있다.

8월 말 출시된 데뷔 EP [ALL YOU WANT]는 아이즈의 활동을 낙관적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또렷한 후렴 멜로디로 상쾌함을 발산하는 타이틀곡 '다해', 후렴에서의 가성 가창이 감미로움을 곱절로 만드는 '너라서 (Is You)'는 대중성이 강하면서 만듦새도 준수하다. 웰메이드 팝 록의 본보기나 다름없다.

최근 엔플라잉(N.Flying), 데이식스(DAY6), 허니스트(HONEYST), 더 이스트라이트(The EastLight) 등 아이돌 록 밴드가 속속 나오고 있기에 아이즈도 이들과 함께 언급되는 일이 늘어날 듯하다. 홍보는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셈. 중요한 과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매끈한 노래를 선보이는 일이다.


가바펀치 | 불안함을 날려 드립니다
이들의 이름을 접한 사람들 대다수가 '가바'를 궁금해할 것 같다. 펀치는 익숙한 외래어지만 앞의 두 음절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가바는 '감마아미노부티르산'(gamma-aminobutyric acid)의 약어로, 신경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있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라고 한다. 따라서 그룹 이름은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불안함을 날려 주겠다는 의미로 해석 가능하다. 이름에서 의학, 생명과학, 물리학과 체육이 숨 쉰다.

다소 낯선 단어가 이름에 등장한 배경은 멤버의 이력 때문이다. 2인조 밴드 가바펀치의 한 축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유상우 박사가 맡고 있다. 작명은 분명히 그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또 다른 멤버는 음악 활동을 해 온 친동생이라고 한다. 장유유서의 태도로 형의 제안을 그대로 따랐나 보다.

색다른 이름만큼 음악도 이채롭다. 이달 중순 출시된 이들의 정규 앨범 [Family]는 재즈 퓨전, 하드록 등 요즘 쉽게 접할 수 없는 장르로 구성돼 있다. 수록곡 다수가 템포가 빠른 편이고, 베이스 파트가 강조돼 경쾌하다. 대중적인 스타일은 아니지만 청량감은 어느 정도 나타난다. 음악이 이름값을 한다.

2017/10
뮤즈몬 https://blog.naver.com/muzmon/221120581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