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일본 여성 뮤지션들 원고의 나열

지난 10월 말 꽤 재미있는 앨범이 나왔다. 여덟 곡으로 구성된 음반은 체임버 팝 성분이 가미된 팝 록, N Sync나 Britney Spears의 전성기를 연상시키는 팝, 뉴웨이브, 얼터너티브 R&B 등 여러 스타일로 다채로움을 뽐낸다. 각기 다른 양식을 통해 형성된 넓은 시대적 폭도 즐거움을 배가한다. 리나 사와야마(Rina Sawayama)의 데뷔 EP [Rina]가 흥미로운 작품의 주인공이다.


1988년 일본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Rina Sawayama는 모델, 배우로 활동해 오다가 2013년 'Sleeping In Waking'을 발표하며 가수 직함을 갖게 된다. 하지만 데뷔작이 은퇴작으로 여겨질 만큼 거기서 허무하게 디스코그래피가 끊겼다. 그러다가 지난해 1월 'Where U Are'를 출시해 긴 세월 단절됐던 가수 경력을 잇기 시작했다. 올해 초 대중음악 전문지 "페이더"(The Fader)가 선정한 "2017년 주목할 아티스트 13인"에 들 정도로 그녀의 신곡은 퍽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스트리밍 서비스가 이뤄지는 R&B풍의 일렉트로팝 'Cyber Stockholm Syndrome'도 매력적이다. 이 노래로 Rina Sawayama는 많은 음악팬의 눈길을 끌고 있다. 숙성 신인의 두 번째 데뷔가 은근하게 흡인력을 낸다.

현재 Rina Sawayama는 자국이 아닌 영국에 거주하며 활동 중이다. 이 덕분에 서구 음악팬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그녀처럼 북미나 유럽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일본인. 혹은 일본계 여성 뮤지션들을 꼽아 본다.


헤일리 키요코(Hayley Kiyoko) | 솔로로 잘나갈 예정입니다
어쩌면 Hayley Kiyoko는 음악팬들보다 미국 드라마 애청자나 영화팬들에게 더 익숙할 듯하다. 디스코그래피에 비해 필모그래피가 더 풍성하기 때문이다. 조연을 맡은 "인시디어스 3"(Insidious: Chapter 3)는 우리나라에서 80만 명이 넘는 관객수를 기록했다. 2015년과 2016년에는 "CSI: 사이버"(CSI: Cyber) 시리즈에 출연해 한층 인지도를 높였다.

배우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Hayley Kiyoko의 연예계 입문 영역은 음악이었다. 그녀는 2007년 Vitamin C가 기획한 걸 그룹 The Stunners의 멤버로 발탁됐다. 여기에는 최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Tinashe도 속해 있었다. 음악계에 큰 충격을 가하겠다는 포부를 이름에 내비쳤지만 그룹은 2009년 단 한 장의 EP를 남기고 분해되고 만다. 오히려 충격은 본인들의 몫이었다.

기대했던 첫걸음이 실망스럽게 끝난 나머지 Hayley Kiyoko는 그 뒤로 연기에 집중했다. 그래도 노래에 대한 욕심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그녀는 2013년 첫 솔로 EP [A Belle To Remember]를 출시하며 가수로서의 날갯짓을 다시 시작했다.

짤막하게 종료됐던 The Stunners 때와 마찬가지로 Hayley Kiyoko는 트렌디한 댄스 팝을 주메뉴로 선보인다. 젊은 세대가 좋아할 음악이다. 구성도 다들 미끈하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의 노래가 시장에 넘치는 탓에 그녀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보편성 이상의 괄목할 개성이 추가된다면 히트도 조만간 따라올 것이다.


어피(Uffie) | 흥을 유발하는 괴짜 일렉트로닉 뮤지션
출생 배경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일본계라는 것을 알기 어렵다. 얼굴에서 동양인 특유의 생김새가 잘 드러나지 않는 탓이다. 본명도 Anna-Catherine Hartley로, 이름에도 일본계임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없다. 하지만 Uffie는 일본인 어머니를 뒀다. 아버지는 프랑스계 영국인이라고 한다.

여러 핏줄이 섞이고 미국, 홍콩, 프랑스를 오가며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기 때문인지 Uffie의 음악은 무척이나 복합적이다. 신스팝, 힙합, 뉴 디스코, 애시드 하우스 등이 동시에 나타난다. 많은 장르를 한꺼번에 풀어내니 조잡해질 공산이 크지만 결과물은 항상 그 우려에서 벗어난다. 다채로움이 번듯하게 펼쳐진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노래는 없을지라도 아기자기함을 전면에 띤 일렉트로 합 'Pop The Glock', Beastie Boys의 힙합을 일렉트로클래시로 변환한 듯한 'MC's Can Kiss' 등을 통해 Uffie는 독특함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전자음악의 명가 에드 뱅어 레코드(Ed Banger Records)가 괜한 이유로 그녀를 스카우트한 것이 아니다.

괴이하면서도 재미있는 음악을 들려주던 Uffie는 2011년 이후 창작 활동을 중단했다. 팬들은 장기간 섭섭함을 느끼는 상황. 하지만 지난해 SNS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함으로써 그동안 쌓인 아쉬움을 누그러뜨렸다. 그녀가 이번에는 어떤 신기한 노래를 선보일지 궁금하다.


즈네이 아이코(Jhene Aiko) | 얼터너티브 R&B의 두드러지는 인물
흑인음악 애호가들이라면 익히 알 일본계 싱어송라이터가 아닐까 싶다. Jhene Aiko는 2000년대 초반 4인조 R&B 그룹 B2K의 'Tease', 'Dog' 등에 객원 보컬로 참여하며 가수 경력을 시작했다. 2003년 데뷔 앨범 [My Name Is Jhene]를 제작하지만 음반사 사정으로 출시되지 못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는 학업에 집중하겠다며 음악계를 떠난다.

그러나 은퇴는 영원하지 않았다. 2011년 믹스테이프 [Sailing Soul(s)]를 출시함으로써 음악계에 복귀했고, 그 뒤 선보인 EP와 정규 앨범들이 좋은 반응을 얻어 그녀의 두 번째 음악 인생은 순풍을 타게 됐다. Jhene Aiko는 본인의 노래로는 어느 정도 실험성을 드러내면서 Chris Brown, Drake, Big Sean 등 동료 뮤지션들과 활발히 협업함으로써 인지도도 높였다. 예술가적 면모를 획득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기도 따르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밀라 제이(Mila J) |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중
Jhene Aiko를 언급했으니 래퍼 겸 싱어송라이터 Mila J를 얘기하는 것이 당연하다. 둘이 자매인 까닭이다. Mila J가 Jhene Aiko보다 여섯 살 많다.

가수 데뷔도 언니가 먼저였다. Mila J는 1990년대 초반 또 다른 동생 Miyoko와 Gyrl이라는 3인조 R&B 걸 그룹을 결성한다. 그룹은 보이 R&B 트리오 Immature의 뮤직비디오와 공연에 출연하며 찬찬히 음악팬들에게 얼굴을 알려 나갔다. 하지만 괜찮은 흐름은 정식 활동에 연결되지 않았다. Gyrl은 각각 1995년과 1997년에 'Play Another Slow Jam', 'Get Your Groove On' 두 편의 싱글을 낸 뒤 해체했다.

한동안 음악계를 떠나 있던 Mila J는 새로운 4인조 걸 그룹 Dame Four에 속해 2005년 'How We Roll'을 출시하며 가수 활동을 재개했다. 그러나 이 팀도 얼마 가지 못해 흩어졌다. 혼자가 된 Mila J는 곧바로 솔로 앨범을 제작하지만 몇 편의 싱글만 냈을 뿐 음반 출시는 무산됐다. 음악인으로서의 운명이 참 기구한 그녀였다.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음에도 Mila J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Japallonia로 예명을 바꾸고 2012년 믹스테이프를 발표했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해 꾸준히 작품 활동을 벌이는 중이다. Mila J는 굳은 뚝심으로 흑인음악 마니아들의 눈길을 사고 있다.


미츠키(Mitski) | 평단이 사랑하는 인디 록의 기린아
지난해 다수의 매체가 Mitski의 [Puberty 2]를 "올해의 음반" 중 하나로 선정했다. 사랑, 그리움, 좌절, 사회적 소외감 등 앨범에 분포된 다양한 감정이 평론가들의 기호를 만족하는 일등 요인으로 작용했다. 록을 주요 어법으로 삼으면서 드림 팝, 펑크 록 등으로 가지를 뻗은 사항도 강점이었다.

Mitski의 음악은 늘 강약이 이채롭게 공존한다. 한 노래에서도 일렉트릭 기타와 통기타를 같이 사용해 거친 소리와 맑은 질감을 동반하곤 한다. 그런가 하면 보컬에도 낙차를 크게 적용해 고요함과 약간의 광기를 함께 나타낼 때도 있다. 음악이 대중적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한번 들어 보면 기억에 남을 만큼 강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