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지만은 않았던 빌보드 넘버원 노래들 원고의 나열

14위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8월 26일 8위를 기록하며 상승세를 선명히 나타냈을 때에는 다소 불길했다. 9월 2일자 차트에서 3위를 찍은 뒤, 같은 달 23일자 차트에서 2위까지 올라서며 1위 Taylor Swift의 'Look What You Made Me Do'를 압박할 때에는 두렵게 느껴졌다. 자칫하면 왕좌의 주인공이 바뀔 것 같았다.


우려하던 바는 현실이 됐다. 한 주 더 2위 자리에 머물며 뛰쳐나갈 타이밍을 노리던 노래는 10월 7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마침내 정상에 등극했다. 신인 래퍼 Cardi B는 성공 스토리를 썼지만 몇몇 이들에게는 이 모습이 달갑지 않은 형국으로 다가오기도 할 것이다. 노래가 구리기 때문이다.

작품성과 대중성은 따로 놀 때가 잦다. 전문가들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훌륭하다는 노래가 히트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면에 어떤 노래들은 음악적인 완성도나 가사가 볼품없음에도 큰 인기를 얻곤 한다. 많은 청취자의 기호가 귀에 잘 익는 것, 재미있는 것으로 향하는 까닭이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노래 중에는 예술성, 또는 인문학적 가치가 현저히 떨어지는 작품이 제법 된다.


D4L 'Laffy Taffy' (2005)
남부 힙합의 하위 장르인 스냅 뮤직(Snap Music)의 융성을 주도한 노래 중 하나다. "롤랜드"(Roland)사의 TR-808 드럼머신으로 이룬 바삭거리는 리듬과 단출한 신시사이저 루프가 반주의 전부다. 여기에 말랑말랑한 사탕 브랜드인 "래피 태피"(Laffy Taffy)를 연신 외침으로써 친숙성과 중독성을 도모했다. 반복되는 단순함이 음악팬들을 사로잡았다.

음악은 나름대로 아기자기하지만 가사는 딴판이다. 'Laffy Taffy'는 구강성교를 암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가사를 기재할 수 없을 만큼 야한 표현이 요동친다. 하지만 많은 음악팬이 노래를 숨겨 왔던 성욕 해소의 대체재로 여겼는지 2005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다.


Soulja Boy Tell'em 'Crank That (Soulja Boy)' (2007)
매스게임을 방불케 했다. 클럽에서 'Crank That (Soulja Boy)'가 흐르면 거의 모든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이 춤을 췄다. 노래를 통해 선보인 Soulja Boy의 춤은 쉬운 동작 덕분에 많은 이에게 전파됐다. 최근 몇 년 동안 유행하고 있는 댑(Dab) 댄스보다 열기가 더 뜨거웠다. 춤의 인기에 힘입어 노래는 스냅 뮤직 광풍의 정점을 찍었다.

스냅 뮤직인 이유로 'Crank That (Soulja Boy)' 역시 곡의 구성은 간단하며, 가사는 대부분 남부 힙합과 마찬가지로 추잡하다. 이 여자, 저 여자를 다 거느리고, 본인의 마음에 드는 여자는 함부로 대하겠다는 다짐을 자랑스럽게 한다. 쓰레기 같은 노래다. 그럼에도 이런 퇴폐적인 사상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노래는 2007년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Los Del Rio 'Macarena (Bayside Boys Mix)' (1995)
1993년 출시된 원곡은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2년 뒤 미국의 프로덕션 팀 The Bayside Boys가 리믹스한 버전이 트렌디함과 경쾌함을 획득한 덕에 클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리믹스 버전의 뮤직비디오에서 여성 출연자들이 행한 간단한 무용은 노래에 대한 관심을 한층 높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카레나 춤은 크게 유행했다. 집단 춤의 역사에서 빛나는 흔적을 남긴 것 중 하나가 'Macarena'다.

노래에 특별히 주시할 내용은 없다. "남자들이 사족을 못 쓸 정도로 자기는 멋진 여자다.", "많은 남자가 나에게 매달리지만 누구도 날 가질 수 없다." 이런 식으로 자랑을 한 뒤 자기와 함께 춤을 추며 신나게 놀자고 말한다. 알맹이와 여운은 없었음에도 'Macarena'는 재미를 앞세워 한철 장사를 단단히 했다. 하지만 이후 또 다른 히트는 달성하지 못해 'Macarena'는 춤으로 살고 춤에 죽은 대표작으로 기억되게 됐다.


The Black Eyed Peas 'Boom Boom Pow' (2009)
간결하지만 베이스라인 볼륨을 부각한 반주로 지그시 흡인력을 발산한다. 중반부부터는 신시사이저를 추가해 세련된 느낌을 추가한다. 오토튠으로 왜곡한 보컬은 한층 곡의 탄력을 높인다. TR-808 드럼머신으로 빚은 리듬은 1980년대 일렉트로 펑크의 기운을 복원하며, 곳곳에 배치된 전자음은 현대적인 감각을 강조한다. 신구 문법이 함께 숨 쉰다.

음악은 말쑥하지만 노랫말은 형편없다. 미래 지향적으로 즐기자는 내용을 들어내고 나면 "붐붐붐"만 잔류한다. 이것 역시 중독성을 내기 위한 인위적 장치에 불과하다. 나트륨 덩어리나 다름없다. will.i.am은 자극에 길든 21세기 음악팬의 일반적 취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Vanilla Ice 'Ice Ice Baby' (1990)
여느 힙합과 다를 바 없이 자기 자랑으로 점철된 나머지 가사는 그냥 한 귀로 흘려버려도 될 만큼 잡스럽다. 그러나 나지막하게 되뇌던 "아이스 아이스 베이비."라는 가사는 귓가에 오래 맴돈다. 곡에 쓰인 Queen과 David Bowie의 'Under Pressure' 반주는 친숙함을 더해 노래의 중독성을 증대한다. 당시 얼마 없던 백인 래퍼라는 사실도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데 도움이 됐다. 일련의 강점을 통해 'Ice Ice Baby'는 힙합 노래로는 처음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역사를 썼다.

대중음악사에 특별한 자취를 새겼지만 몇몇 음악팬들은 노래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하찮은 가사와 래핑 때문만은 아니다. 노래가 처음에는 Queen과 David Bowie의 이름을 작곡가 이름에 기재하지 않은 탓이다. Queen의 기타리스트 Brian May는 'Ice Ice Baby'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하고 있을 때 한 클럽에서 듣고 그들의 노래가 쓰인 것을 알게 됐다고 한다. 록 애호가들에게 'Ice Ice Baby'는 괘씸하게 느껴질 작품이었다.


Cardi B 'Bodak Yellow' (2017)
다시 트랩 뮤직이 빅히트를 달성했다. 여름 가고 가을이 오나 했는데 끝 칸에 타고 있던 무더위가 반짝 힘을 낸 모양새다. 뻔한 박력이 무미건조하게 흐른다. 획일화되고 시시껄렁한 플로로 도배됐음에도 그것이 빚는 익숙함으로 대중에게 애청됐다. 복 받은 노래다.

가사는 얼마나 너절한가. 자기 자랑, 허언, 황금만능주의, 남 깔아뭉개기, 성욕의 불합리한 해소 등 힙합이 지닌 도덕적, 사회적 문제점을 한자리에 불러들인 표본이다. 이처럼 볼썽사나운 면이 뚜렷함에도 노래는 큰 성공을 거뒀다. 'Bodak Yellow'는 많은 사람이 은연중에 전파될 좋지 못한 사상에 무신경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일례라고 할 만하다.


Right Said Fred 'I'm Too Sexy' (1991)
영국의 팝 밴드 Right Said Fred의 데뷔 싱글로, 자국 차트에서는 2위에 만족해야 했지만 빌보드에서는 1위에 올랐다. 'I'm Too Sexy'는 하우스 음악과 펑크(Funk)의 성분을 소량 가미해 다소곳하게 흥을 발산한다. 충분히 경쾌하지만 절제미가 느껴진다.

그러나 가사는 곡이 띠는 자세와 전혀 다르다. 어디에서든 무엇을 하든 자기는 섹시하며, 나아가 자기와 관계된 모든 것까지 섹시하다고 얘기한다. 약 3분 동안 쉼 없이 자기최면을 근간으로 한 느끼한 나르시시즘이 펼쳐진다. 어떤 이에게는 자신감을 부여해 줄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이에게는 김치를 찾게 할 노래다.


Desiigner 'Panda' (2015)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판다. 2015년 히트한 Desiigner의 'Panda'에는 마흔네 번 "판다"가 등장한다.

비디오게임 "그랜드 세프트 오토 5"(Grand Theft Auto V)를 하다가 영감을 얻어 쑤셔 넣은 동일한 단어들을 뽑아내 봐도 기억에 남을 만한 가사는 하나도 없다. 범죄를 꿈꾸는 이의 허황된 모습만 나타난다. 이런 개똥만도 못한 가사를 쓰고도 Desiigner는 저작권료로 1년에 수억씩은 벌 것이다. 세상은 누구에게는 아름답지만 누구에게는 헛헛함을 안긴다.

멜론-멜론매거진-이슈포커스 http://www.melon.com/musicstory/inform.htm?mstorySeq=5773&startIndex=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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