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빛깔을 뽐내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 원고의 나열

노랫말을 쓰고 멜로디를 짓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탁월한 문학적 감각과 음악성을 갖추고 있어야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싱어송라이터들을 보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여기에 독자적인 색깔까지 나타내는 이들은 더욱 근사해 보인다. 댄스음악을 하는 아이돌 그룹이 압도적으로 많은 가요계에서 주니엘, 스텔라장, 리차드파커스, 새벽공방은 그들만의 어법을 구사함으로써 음악팬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다.


주니엘 | 시선을 사로잡는 변화와 성장
어느덧 데뷔 5년을 넘긴 주니엘의 초반 활동은 보통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과 달랐다. 이쪽 군에 속한 대다수 뮤지션이 단출한 구성의 포크 음악을 들려주는 데 반해 주니엘은 여러 악기를 들여 호화로움을 연출했다. 때문에 싱어송라이터였음에도 아이돌 이미지가 진할 수밖에 없었다.

소속사를 옮기고 작년 7월에 낸 '물고기자리'는 그간 쌓아 온 인상이 옅어지는 노래였다. 리듬감이 어느 정도 있긴 했으나 이전 노래들보다 훨씬 수더분했다. 이때까지 타이틀로 선정된 작품은 다른 작곡가에게서 받은 곡이었지만 '물고기자리'는 주니엘이 작사, 작곡한 최초의 타이틀곡이었다. 아티스트로서 주도권을 갖게 된 것이다.

지난 10월 31일 출시한 EP [Ordinary Things]도 주니엘이 온전히 주인이 되는 활동의 연장이다. 다섯 편의 수록곡 모두 본인이 작사, 작곡했으며, 이번에는 전체 지휘까지 담당했다. 주니엘은 시부야계풍의 일렉트로니카 넘버 'Last Carnival', 차분함과 펑키함을 왕복하는 팝 'Merry-Go-Round'를 통해 또다시 변화를 선보인다. 이 중 'Last Carnival'은 댄스음악을 골격으로 하지만 본인의 아픈 기억을 타고 나온 가사 때문에 무게감을 갖는다.

타이틀곡 '혼술'은 곡 자체는 그리 어둡지 않지만 고된 일상을 버티는 청춘의 모습을 담은 노랫말로 황량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그럼에도 동시대의 젊은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결국 희망을 찾는 내용으로 은은하게 온기를 발산한다.

새로운 둥지를 틀고 난 뒤에 낸 노래들에서 성숙함이 읽힌다. 데뷔 초반의 생생함은 많이 가신 상태. 대신 찬찬하고 세밀한 느낌이 더 크게 전달된다. 포크와 팝 록을 넘어 이런저런 스타일을 시도하는 모습에서 음악인으로서의 강한 욕심도 느껴진다. 주니엘의 행보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


스텔라장 | 유쾌한 표현력을 갖춘 독보적 캐릭터
스텔라장은 참 재미있는 뮤지션이다. '어제 차이고', '소녀시대' 같은 노래에서는 발랄함을 드러내지만 '뒷모습', '그대는 그대로' 등에서는 차분함을 표출한다. 때로는 처연함을 살며시 내보이기도 한다. 노래마다 정서와 분위기가 달라 흥미롭다.

다채로운 음악 스타일도 감상의 즐거움을 배가해 준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로 앞에 나서서 포크 형식을 띠는 가운데 곁들이는 악기들을 슬기롭게 편성해 노래들에 컨템포러리 R&B, 힙합, 팝 록 등의 외투를 입힌다. 지난 7월에 발표한 '그대는 그대로'는 피아노와 호흡을 맞추면서 솔뮤직, 가스펠 느낌을 냈다. 변화를 거듭하는 덕에 노래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남다른 표현력은 스텔라장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어제 차이고'는 이별을 겪은 사람이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하는 비이성적 행동과 그에 따른 후회, 옛 연인을 향해 품는 악감정을 현실감 있게 묘사하며, '소녀시대'는 그룹 소녀시대를 비교 대상 삼아 소녀들에게 청순한 모습을 요구하는 고정관념을 지적한다. 친근한 소재를 익살스럽게 풀어내는 장기는 직장인들의 애환을 노랫말 재료로 택한 EP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에서도 환하게 빛났다.

스텔라장은 음반 소개 글에서도 특별한 감각을 뽐낸다. 지금까지 낸 음반은 대부분 그녀가 직접 소개 글을 작성했다. 노래에 대한 콘셉트나 소회를 간략하게 기술하면서 그녀는 반전의 웃음 포인트를 넣곤 한다. 음악에 진지함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이유가 실생활과 성격에서 비롯됐음을 알게 된다.

이달 1일 발표한 신곡 '치어리더'에서 스텔라장은 또 한 번 유쾌함과 변화무쌍함을 똘똘 뭉쳐 나타낸다. 이번에는 온전히 랩만 하는 힙합을 들려준다. 하지만 그녀만의 특색은 어디 가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해 주겠는 헌신적인 태도를 깜찍하게 표출한다. 노래는 "No money, no car, no rolex."를 표어로 삼았지만 스텔라장은 "그래도 머니 카 뢀렉스 있는 게 낫습니다."라고 소개 글을 써서 웃음을 유발한다.

스텔라장은 주변을 깊게 바라보고 이를 아기자기하게 전달한다. 여기에 음악적 견고함까지 갖춘다. 때로는 래핑으로 보컬의 폭을 넓히는 것도 장점이다. 작년에 낸 'Colors'의 가사("I could be every color you like.")처럼 대중이 좋아할 모든 색이 될 수 있는 뮤지션이다.


새벽공방 | 귓가에 맴도는 담백함
새벽공방의 멤버 희연과 여운은 팀을 결성하기 전 각자 솔로 싱어송라이터, 피아니스트로서 몇 편의 싱글을 발표했다. 이들은 혼자 활동할 때는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지난해 짝을 이룬 뒤 음악팬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옥상달빛, 랄라스윗, 제이레빗 등이 형성한 여성 포크 듀오 시장에서 집적이익을 누린 셈이다.

그렇다고 데뷔하자마자 확 뜬 것은 아니다. 첫 두 싱글 '우산 속 우리'와 '꿈에서 만나'를 향한 반응은 미미했다. 그러나 올해 2월 발표한 애니메이션 <카드캡터 체리> 주제곡 리메이크 버전이 입소문을 타면서 이들의 인지도는 급상승했다.

덕분에 이후에 낸 '어른이', '오후의 무엇' 등도 이전 싱글들보다 많은 관심을 얻었다. 래퍼 겸 프로듀서 키겐과 함께한 '별들도 눈 감은 밤'은 본래 이들의 노선을 잠깐 벗어나 일렉트로팝으로 변신해 팬들에게 신선함을 안겼다.

새벽공방의 노래들은 그룹 이름에서 나오는 심상처럼 대체로 고요하고 섬세했다. 반면에 팬들의 요청에 의해 취입한 애니메이션 주제가 '달빛천사'나 10월 중순 출시한 '오후의 무엇'에서는 명랑한 기운을 내기도 한다.

이처럼 다른 성격을 띠는 중에도 담백함은 늘 동일하게 존재했다. 이 깨끗한 느낌이 묘하게 여운을 남긴다. 선배 여성 포크 듀오들과는 구분되는 새벽공방만의 매력이다.


리차드파커스 | 개성 있는 목소리를 소유한 R&B 보석
앨범 표지마다 스카잔 점퍼에서나 볼 법한 호랑이 얼굴이 박혀 있다. 호랑이 하면 연상되는 것이 사나움이기에 커버 이미지를 보고 괄괄한 록 음악을 하는 밴드라고 예상하는 음악팬이 많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리차드파커스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작품과 목소리, 외모는 짐작을 한 번 더 전복한다. 조금은 무서워 보이는 커버와 달리 리차드파커스의 음악은 잠잠한 발라드를 골자로 한다. 음색은 허스키해서 원숙함이 물씬 풍긴다. 가창도 요즘 스타일이 아니라서 중년의 느낌도 든다. 그러나 1989년생으로 올해 스물여덟인 그녀는 스무 살쯤으로 보일 만큼 동안이다. 얼굴을 확인하고 노래를 들으면 '저 얼굴에서 이런 목소리가?!' 하고 많이들 놀랄 듯하다.

데뷔 초반 보사노바, 포크, 팝을 두루 소화한 리차드파커스는 2014년 출시한 첫 번째 EP [Psychic]부터 음악 방향을 R&B로 잡기 시작했다. 트렌디한 스타일이 아닌 팝과 가요 특유의 정서가 혼재된 R&B다. 때문에 흑인음악 애호가뿐만 아니라 보통 음악팬들도 편안하게 들을 만하다.

스페이스카우보이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삐에로'에서 리차드파커스는 다시 보사노바 리듬을 덧대 쌀쌀한 가을에 듣기 좋은 음악을 들려준다. 흔하지 않은 목소리로 선명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가수가 안락함까지 구비했다. R&B 신의 보석이 아닐 수 없다.

(한동윤)
20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