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올해의 (외국 영화) 사운드트랙 원고의 나열

음악영화가 부진한 해였다. 26년 만에 실사로 다시 태어난 "미녀와 야수"는 500만 명 넘는 관객을 스크린 앞으로 불러들이며 국내 흥행에 성공했지만 주제가는 과거의 뜨거운 반응을 복원하지 못했다. 요절한 래퍼 2Pac의 전기 영화 "올 아이즈 온 미"는 장르가 지닌 한계 탓에 8천 명에 못 미치는 관객을 모으는 데 그쳤다.

하지만 다수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적재적소에 멋진 노래를 담음으로써 관객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줬다. 개봉을 앞둔 "위대한 쇼맨"과 "피치 퍼펙트 3"는 배우들이 직접 부르는 노래로 관객에게 유쾌함을 선사할 듯하다. 2018년에는 올해보다 더 훌륭한 사운드트랙을 많이 접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올해 영화팬,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사운드트랙을 헤아려 본다.

* 스포일러가 포함됐을 수 있습니다.


50가지 그림자: 심연 | 영화는 나락에 빠졌지만
전작이 획득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깨지 못했다. 3부작으로 구성된 에로 로맨틱 영화 "50가지 그림자"의 2편 "50가지 그림자: 심연"은 우리나라에서 18만 9천여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데 그쳤다. 36만 4여 명이 찾았던 1편의 반 토막 기록이다. 전 세계적으로 예산의 여섯 배가 넘는 수익을 올렸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초라하게 머물다 갔다.

평론가들한테도 연신 혹평을 들어야 했지만 사운드트랙만큼은 괜찮았다. Halsey, Tove Lo, Sia 등 이 시대 가장 주목받은 젊은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해 근사한 컨템포러리 팝 음반을 완성했다. 그 어떤 컴필레이션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초호화 라인업이다. Zayn Malik과 Taylor Swift가 부른 리드 싱글 'I Don't Wanna Live Forever'는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올랐다. 볼품없는 영화는 빼어난 사운드트랙을 남겼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 | 이번에도 끝내줬어요
그레이 씨의 고상한 취미는 철저하게 외면받았지만 은하계 수호자들은 전보다 더 많은 지지자를 얻었다. 2014년 개봉한 1편의 국내 관객수는 130만 명을 웃돌았다. 이에 비해 3년 만에 돌아온 속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는 270만 명 넘는 영화팬을 호출했다. 그 사이 한국에서 개봉한 마블코믹스의 영화에 대한 인기가 상승한 덕도 크지만 1편이 재미있었다는 평이 많은 관객을 모으는 원동력 중 하나가 됐다.

1편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이 생각을 했을 듯하다. "이번에는 어떤 노래가 영화에 등장할까?" 1편에서 주인공 퀼(Chris Pratt 분)은 암에 걸린 어머니로부터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녹음한 테이프를 받는다. "Awesome Mix Vol. 1"이라고 이름 붙인 이 테이프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는 매개인 동시에 영화의 흥을 담당하는 도구로 쓰인다.

1탄과 마찬가지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에 등장한 2탄 역시 1970, 80년대 노래들로 구성됐다. 예고편에 삽입된 영국 밴드 Sweet의 1975년 히트곡 'Fox On The Run'부터 기대감을 높이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노래의 장르가 글램 록이자 파워 팝이라서 영화가 화려함과 역동성을 뽐낼 것을 예고하는 듯했다.

영화의 도입부 퀼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데이트할 때 흐르던 미국 밴드 Looking Glass의 'Brandy (You're A Fine Girl)'이나 퀼이 가모라(Zoe Saldana 분)와 춤을 추는 장면에 배치된 Sam Cooke의 'Bring It On Home To Me',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팀과 우주 괴물 간의 싸움을 경쾌하게 꾸며 준 Electric Light Orchestra의 'Mr. Blue Sky' 등 이번에도 영화의 감흥을 배가하는 노래들이 가득하다. 테이프 이름처럼 "끝내주는" 노래들의 잔치다.


겟 아웃 | 적지만 알차다
영화는 어느 날 밤 인적 없는 거리에서 흑인이 납치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때 제2차 세계대전 때 활동한 영국의 코미디 듀오 Flanagan And Allen이 부른 'Run Rabbit, Run'이 흐른다. 농장에서 금요일마다 "토끼 파이 데이"가 열리고, 농부들은 이 날을 위해 토끼 사냥에 나서니 토끼들은 도망가기 바쁘다는 내용의 노래다. 흑인들이 사냥감이 되는 영화 속 설정에 대한 은유다.

음악감독 Michael Abels가 작곡한 'Sikiliza Kwa Wahenga (Main Title)'에 이어 오프닝 크레디트와 함께 깔리는 Childish Gambino의 'Redbone'은 영화 그 자체다. "이제 정신 차리고 있어. 그들이 살금살금 다가갈 거야. 그러니 눈을 감아선 안 돼."(Now stay woke, niggas creepin'. Now don't you close your eyes.) 이 가사가 영화 내용을 압축한다. 이 중 "nigga"만 "whitey" 정도로 바꾸면 완벽하다. 원래는 사랑, 육체적 관계를 갈구하는 내용이지만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Daniel Kaluuya 분)가 처한 상황과 소름 끼치게 잘 들어맞는다.

영화가 절정에 이를 때 크리스의 여자 친구 로즈(Allison Williams 분)가 이어폰을 끼고 듣는 노래로 1987년 영화 "더티 댄싱"의 주제곡 '(I've Had) The Time Of My Life'가 나온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당신을 원해요."(I want you more than you'll ever know.)라는 가사는 악당들의 입장이며, "이제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을 가졌어요. 전에는 이런 감정을 느껴 본 적 없죠."(Now I've had the time of my life. No, I never felt like this before.)라는 노랫말은 크리스에게 역설적으로 해당된다. 여자 친구는 모르게 그녀의 방 바깥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그야말로 "더티 댄싱"이다.


베이비 드라이버 | 사운드트랙에 의한, 사운드트랙을 위한
은하계 수호자들만큼이나 사운드트랙이 호화로웠던 영화였다. 감독 Edgar Wright가 연출을 맡았던 영국 전자음악 밴드 Mint Royale의 2002년 싱글 'Blue Song' 뮤직비디오가 "베이비 드라이버"의 모티프가 됐던 터라 음악이 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감독은 10여 편의 노래들을 미리 정해 두고 스토리를 짰다. 여기에 살을 더 붙여 서른 곡을 사운드트랙으로 구성하게 됐다.

많은 관객이 오프닝 신에서부터 흥분했을 듯하다. 도둑들이 은행으로 들어갈 때 흐르던 Jon Spencer Blues Explosion의 'Bellbottoms'는 블루스와 하드록, 펑크가 뒤섞인 거친 사운드로 박진감을 터뜨린다. 뒤이어 배우들의 이름이 소개되는 장면에서는 Bob & Earl의 'Harlem Shuffle'이 베이비(Ansel Elgort 분)의 동작과 딱딱 맞아떨어지며 재차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외에도 베이비가 팀의 계획을 틀어지게 한 뒤 달아날 때 흐르는 Focus의 'Hocus Pocus', 한때 사업 동료였으나 대립하게 된 버디(Jon Hamm 분)가 베이비와 애정을 쌓던 데보라(Lily James 분)를 볼모로 베이비를 협박할 때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Barry White의 'Never, Never Gonna Give Ya Up'은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 가장 큰 의미를 둔 노래는 Commodores의 1977년 히트곡 'Easy'일 것이다. 베이비가 범죄(자들의 도주를 돕는) 생활을 청산할 때 느끼는 홀가분함이 이 노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Easy'는 Sky Ferreira의 리메이크 버전도 마련돼 제대로 맞이하게 된 해방감을 서술한다.


로건 | 잔혹한 액션, 구슬픈 음악
제법 많은 노래가 등장한다. 영화의 맨 처음 로건(Hugh Jackman 분)이 라틴계 불량배들을 맞닥뜨릴 때에 깔리는 Santi Mostaffa의 'Las Mil Y Una Noches', 로건이 클럽에 여자들을 내려 줄 때 들리는 The Americanos의 'BlackOut', 로라(Dafien Keen 분)와 로건이 물건을 훔치는 주유소-편의점에서 흐르던 Jim Croce의 'I Got A Name' 등 은근히 많은 노래가 쓰였다.

하지만 영화의 여운을 곱절로 만든 것은 음악감독 Marco Beltrami가 작곡한 'Main Titles'였다. 어둡고 쓸쓸한 느낌을 자아내는 곡조는 비로소 마무리된 로건의 힘겨운 여정을 소리로 나타내는 듯하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슬픔이 밀려온다.


킹스맨: 골든 서클 | 발길질과 리듬은 함께 뻗어야 제맛
전작과 마찬가지로 음악이 액션을 한층 호화롭게 만든다. 에그시(Taron Egerton 분)가 찰리(Edward Holcroft 분)와 차 안에서 싸우는 장면에서는 Prince & The Revolution의 'Let's Go Crazy'가 박진감을 높인다. 에그시와 해리(Colin Firth 분)가 악당들을 무찌르는 신은 Elton John의 '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과 Cameo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The BossHoss의 'Word Up!' 덕에 더욱 흥겹게 표현됐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킹스맨"이 아닌 "엘튼맨"이 됐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