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가요계 스케치 원고의 나열

여전히 오디션 프로그램이 활개를 쳤고, 아이돌 그룹은 더욱 늘어났다. 2017년에도 우리 대중음악의 전경은 평년과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지속되는 굵직한 트렌드 안에서 색다른 변화가 일기도 했으며, 누구는 이 경향을 비집고 나와 새롭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해외에서 명성을 날린 가수도 존재한다. 바쁘게 달려온 올 한 해 가요계를 돌아본다.


방망이 없이 요술을 부린 도깨비
2016년이 저물 때 나타나 두어 달간 브라운관에 머물다 떠난 도깨비의 마법은 굉장했다. 도깨비와 저승사자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를 산산이 깬 캐스팅과 달콤한 로맨스, 드라마 속 근사한 경치는 수많은 시청자의 눈길을 낚아챘다.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도깨비 패션", "도깨비 촬영지", "도깨비 명대사" 등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했다. 그 두 달 동안은 도깨비 세상이나 다름없었다.

드라마는 음원시장에까지 맹위를 떨쳤다. 찬열과 펀치가 부른 'Stay With Me', Crush의 'Beautiful', 에디킴의 '이쁘다니까' 등 "도깨비"의 사운드트랙들은 하나같이 출시되자마자 음원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특히 에일리의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는 드라마가 종영한 뒤에도 여러 음원사이트의 차트 정상에서 내려올 줄 몰랐다. 저승사자가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를 데리고 가야 할 판이었다.


휴양지가 된 가요계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다. 음악팬이라면 2017년 가요계에 강하게 불어닥친 이국의 바람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WINNER의 'Really Really', 효린과 창모가 부른 'Blue Moon', 아스트로의 'Baby', 청하의 'Why Don't You Know', KARD의 'Hola Hola', 현아의 '베베 (BABE)', 프리스틴의 '티나 (TINA)' 등 트로피컬 하우스를 바탕으로 한 노래가 집중 출하됐다. 그야말로 붐이었다.

트로피컬 하우스는 2015년 OMI의 'Cheerleader (Felix Jaehn Remix)', Justin Bieber의 'What Do You Mean?' 등이 주류에 부상한 이후 Kygo의 'Here For You', Mike Posner의 'I Took A Pill In Ibiza (SeeB Remix)' 같은 노래들이 연달아 히트하면서 근래 팝 음악의 인기 장르로 자리 잡게 됐다. 가요계도 이 흐름을 이어받음으로써 트로피컬 하우스의 군락을 형성했다.

트로피컬 하우스의 으뜸 매력은 청량감이다. 장르의 근간이 되는 레게, 댄스홀 성분은 특유의 휴양지 정서로 쾌청함을 자아낸다. 또 다른 중심 뿌리인 하우스 음악 성분은 흥과 세련미를 담담하게 보조한다. 전자음이 거세지 않아서 듣기에 부담이 적다. 이런 장점 덕에 트로피컬 하우스는 마니아 장르임에도 대중의 마음에 쉽게 파고들 수 있었다.


말 많았던 G-DRAGON의 참신한 시도
6월 발매된 G-DRAGON의 EP [권지용]은 분명 새로웠다. 카세트테이프, LP, CD 같은 통상적인 저장 매체가 아닌 USB 플래시 드라이브로 앨범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앞선 2월 이승기도 컴필레이션 앨범 [The History Of Lee Seung Gi]를 USB 형태로 선보였지만 [권지용]은 이승기의 앨범과는 또 달랐다. 노래가 실려 있지 않았던 탓이다.

4GB 용량의 이 저장 장치에는 신곡과 사진 등을 내려받을 수 있는 페이지로 접속 가능한 하이퍼링크만 존재한다. 기존 매체들은 각각의 재생기기를 통해 바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반면에 G-DRAGON의 앨범은 매개 역할을 할 뿐이었다. 이러한 까닭으로 업계에서는 "과연 이 앨범을 음반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견이 분분했다.

가온차트를 운영하는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는 문화와 산업의 변화를 수용해 USB도 음반 판매 집계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권지용]은 매체 안에 음원이 저장된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다운로드를 받도록 해 놓았다는 것을 이유로 음반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결정 내렸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하루가 다르게 다변화되는 디지털 환경을 무시한 구시대적 판단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축구단, 야구단을 배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
보이 밴드 제작을 목표로 한 "프로듀스 101"의 두 번째 시즌은 첫 시즌에 이어 큰 인기를 얻었다. 출연자들이 부른 테마곡 '나야 나 (Pick Me)'는 여기저기서 패러디 소재로 사용되며 널리 전파됐다.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11인조 Wanna One은 정식 데뷔와 동시에 음원차트 정상에 올랐다. 단발성이긴 하지만 또 하나의 대규모 스타 그룹이 탄생했다.

KBS와 JTBC도 10월부터 각각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더 유닛"과 "믹스나인"을 방송하며 대규모 그룹 생산 흐름에 동참했다. 두 프로그램 모두 아홉 명으로 이뤄진 그룹 제작을 골자로 한다. "더 유닛"과 "믹스나인"보다 먼저 전파를 탄 Mnet의 "아이돌학교"도 9인조 걸 그룹 fromis_9을 배출했다. 이렇게 방송가는 열 명 안팎의 멤버를 둔 팀이 예사가 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케이팝의 대명사가 된 방탄소년단
방탄소년단의 2017년은 지난해보다 더 화려했다. 그룹은 5월에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Justin Bieber, Ariana Grande 등의 쟁쟁한 슈퍼스타들을 제치고 "톱 소셜 아티스트" 부문을 수상했다. 아시아 아티스트로서는 최초의 일이기에 본인들은 물론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무척 기쁜 소식이 됐다. 11월에는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여 전 세계 음악팬들에게 한 번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낭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1월 말에 출시한 'MIC Drop (Steve Aoki Remix)'는 12월 16일자 빌보드 싱글 차트 28위를 차지했다. 이전에 같은 차트 67위에 올랐던 본인들의 노래 'DNA'를 경신한 기록이다. 싸이 이후로 수그러들었던 케이팝의 위용이 방탄소년단에 의해 되살아나는 중이라고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역주행은 이제 익숙한 일
역주행은 2017년에도 가요계의 동향 중 하나로 나타났다. 올해 초에는 혼성 듀오 신현희와 김루트가 이 양상의 주인공이 됐다. 한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그룹이 2015년에 발표한 '오빠야'를 부른 것이 빠르게 소문을 타면서 노래는 음원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이에 힘입어 신현희와 김루트의 인지도는 급상승했고, 다수의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NU'EST도 2013년에 낸 '여보세요'가 음원차트 상위권에 들며 역주행의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4년 전에 출시한 노래가 소생한 것은 그룹의 네 멤버가 "프로듀스 101"에 출연한 덕분이었다. 그동안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NU'EST가 꿈을 이루기 위해 오디션 프로그램에 지원한 모습을 본 팬들의 응원이 '여보세요'의 인기로 이어졌다.

하반기 역주행의 대표 주자는 윤종신의 '좋니'였다. 6월 말 출시됐을 때에는 큰 호응을 얻지 못했던 노래는 8월 중순에 음원차트 정상을 밟았다. 신현희와 김루트, NU'EST처럼 몇 년 만에 빛을 본 것은 아니니 역주행이라기보다 조금 더딘 히트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사실 이 현상을 어떻게 부를지는 중요하지 않다. 민서의 여자 버전 답가 '좋아'가 쉽게 성공하는 데 '좋니'의 히트가 초석이 됐다는 점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남성 듀오 멜로망스의 '선물'도 하반기 역주행의 한 축을 담당했다. 그룹이 노래를 발표한 시기는 7월이지만 9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뒤로 인지도가 뛰면서 '선물'이 늦깎이 히트를 달성할 수 있었다. 노래는 현재까지도 다수 음원사이트의 차트 상위권에 머물고 있다.


한류의 또 다른 가능성을 타진한 퓨전 국악
올해 팝 시장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벌인 아티스트는 방탄소년단뿐만이 아니다. 인디 밴드 씽씽도 나라 밖 네티즌들로부터 큰 환호를 이끌어 냈다. 경기민요 이수자인 이희문, 1990년대 후반 자유분방한 형식의 곡과 독특한 가사로 인디 음악 애호가들을 사로잡았던 어어부 프로젝트 출신의 장영규 등이 결성한 씽씽은 록과 민요를 버무린 이채로운 스타일로 외국 음악팬들을 매료했다.

서구 대중음악을 바탕에 둔 반주로 친숙함을 갖추면서도 팝 음악에서는 접할 수 없는 우리만의 야릇한 흥을 발산한 것이 씽씽의 성공 요인 중 하나. 이와 함께 1970, 80년대 글램 록 패션을 연상시키는 남자 멤버들의 과장된 여장도 시각적 재미를 제공한다.

지난 9월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국 NPR의 유튜브 채널에 게재된 씽씽의 15분 남짓한 공연 영상은 두 달 만에 조회수 90만을 훌쩍 넘겼을 정도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외에도 외국에서 수차례 공연을 펼친 씽씽은 내년에는 미국 최대의 페스티벌 중 하나인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잠비나이, 고래야 등과 함께 씽씽이 한류의 또 다른 국면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