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팝 음악계 스케치 원고의 나열

올해 팝 음악계에서는 힙합이 여전히 강세를 나타냈다. 여기에 Ed Sheeran의 'Shape Of You'와 Luis Fonsi의 'Despacito (Remix)'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음악 시장을 삼분하다시피 했다. 다소 단조로운 전경이 이어졌지만 One Direction 멤버들의 화려한 각개격파나 Justin Bieber의 진기록 행진은 음악팬들에게 재미있는 볼거리가 됐다. 이런저런 굵직한 장면을 통해 2017년 팝 음악을 되짚어 본다.


주춤했던 여성 뮤지션
올해는 실로 "남성시대"였다. 빌보드 싱글 차트 꼭대기에서는 아홉 달 넘게 여성 뮤지션의 왕래가 없었다. The Weeknd, Ed Sheeran, Luis Fonsi, Post Malone 등 남자 뮤지션들만 번갈아 가며 드나들 뿐이었다.

3분기 이상 지속된 정적을 깬 최초의 등반객은 Taylor Swift였다. 6집 [Reputation]의 리드 싱글 'Look What You Made Me Do'로 그녀는 다른 올해 여성 뮤지션이 이루지 못한 업적을 최초로 달성했다. 그 뒤 Cardi B의 'Bodak Yellow'가 정상에 올랐다.

두 노래는 각각 3주씩 차트 최고봉에 머물렀다. 여성 뮤지션의 노래가 1위 자리에 기거한 기간은 총 6주에 불과했다. 올해를 포함해 최근 5년 동안(2016년 16주, 2015년 10주, 2014년 28주, 2013년 17주) 가장 저조한 기록이다.


희소한 국면을 연출한 One Direction
음악성의 승리? 타고난 대운? 올해 One Direction의 멤버들이 솔로로서 하나같이 잘된 현상을 깔끔하게 정리할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저 두 요인이 고르게 작용했다고 봐야 할 듯하다. 히트를 하려면 일단 노래가 좋아야겠지만, 괜찮은 모든 노래가 히트하는 것은 아니다. 성공에도 크든 작든 운이 따라 줘야 한다.

게다가 밴드 시절에 받았던 응원이 솔로일 때도 균등하게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한때 숨만 내쉬어도 여성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솟구치던 밴드였다고 해도 솔로로 활동하면 한 명 이상은 죽을 쑤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One Direction은 Niall Horan, Liam Payne, Harry Styles, Louis Tomlinson, 심지어 먼저 팀을 떠난 Zayn Malik까지 다 히트했다. 기본적으로 멤버들이 올해 모두 신곡을 냈다는 사실부터 진귀한 일이다.


희망과 아쉬움이 섞였던 "원 러브 맨체스터"
5월 22일 영국 맨체스터 아레나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는 또 한 번 세계인에게 슬픔을 안겼다. 특히 이번 테러는 Ariana Grande의 공연이 막 끝난 뒤에 일어난 터라 음악계의 충격이 무척 컸다. 본인의 콘서트가 열린 장소에서 생긴 일이었기에 Ariana Grande 역시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녀는 6월 4일 맨체스터의 올드 트래퍼드 크리켓 경기장에서 피해자를 돕기 위한 자선 공연 "원 러브 맨체스터"를 개최했다.

이날 공연에는 Take That, Coldplay, Justin Bieber 등 많은 팝 스타가 출연해 화려함을 이뤘다. 관객도 5만여 명에 달했다. 공연을 통해 2백만 파운드 이상, 우리 돈으로 28억이 넘는 큰 금액이 모였다. "원 러브 맨체스터"는 지구촌이 테러에 굴복하지 않음을 시원하게 천명했으며, 특별한 행사로서도 성공적인 면모를 뽐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적도 일었다. 피해자들의 아픔이 가시지 않았을 상황에서, 더욱이 공연 바로 전날 런던에서 다시 테러가 발생했음에도 콘서트를 강행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했다. 또한 출연자 중 Little Mix와 Miley Cyrus, Katy Perry가 살이 많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것에 대해 추모의 목적이 있는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행색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힙합의 새로운 기록을 작성한 Cardi B
새내기 래퍼 Cardi B는 메이저 데뷔곡 'Bodak Yellow'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름으로써 단숨에 스타 대열에 들었다. 노래는 Lauryn Hill의 'Doo Wop (That Thing)' 이후 19년 만에 탄생한 여성 솔로 래퍼의 1위곡이라는 사실로도 Cardi B에게 경사가 됐다. 힙합 신에서도 특별히 다룰 만한 소식이었다.

한편 두 노래에서 목격되는 사상의 차이는 헛헛함을 느끼게 한다. 'Doo Wop (That Thing)'은 천박한 행동으로 스스로 격을 떨어뜨리는 여성과 여성을 육체적 관계 대상으로만 여기는 남성을 비판하며 세태의 나쁜 면을 조망한다. 그런가 하면 'Bodak Yellow'는 내내 돈, 성공 얘기만 늘어놓으며 뻐기기 바쁘다. 사뭇 다른 모습이다.


라틴 팝 여름을 불사르다
뜻밖이었다. 그냥 잠깐 운이 좋아 히트하는 것처럼 보였던 Luis Fonsi의 'Despacito (Remix)'는 장장 16주 동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지켰다. 1995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위 자리를 고수했던 Mariah Carey와 Boyz II Men의 'One Sweet Day'와 같은 (빌보드 싱글 차트 최장기 집권) 기록이다. 북미권에서는 철저히 무명이었던 Luis Fonsi는 일약 세계적인 가수로 발돋움했다.

노래의 히트는 팝 음악계의 신기록이기도 하다. 영어가 아닌 언어로 된, 혹은 가사의 상당 부분이 비영어인 노래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것은 Los Del Rio의 'Macarena (Bayside Boys Mix)' 이후 21년 만의 일이기 때문이다. Luis Fonsi는 여러모로 "기록의 사나이"가 됐다.


Justin Bieber 대박의 연속
그래도 진정한 기록의 사나이는 Justin Bieber일 듯하다. 'Despacito (Remix)'가 한동안 돌풍을 일으키기 전 1위는 DJ Khaled의 'I'm The One' 차지였다. 단 한 주 왕좌에 앉았을 뿐이지만 이 노래에도 Justin Bieber가 참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Justin Bieber가 부른 두 노래가 연달아 1위에 등극한 것이다. 피처링만으로도 빛나는 흔적을 새긴 그가 내년에는 또 어떤 업적을 이룰지 궁금하다.


개기일식 특수를 누린 Bonnie Tyler
올해 미국인들에게는 8월 21일 개기일식이 성대한 이벤트였다. 부분 개기일식은 가끔 일어나지만 이번에는 미국 대륙을 관통하는 완벽한 개기일식이었기 때문이다. 무려 99년 만에 만나는 드문 광경이었다. 개기일식이 잘 보이는 주요 포인트들에는 수십만 명씩 인파가 몰렸다.

한 세기 만에 다시 찾아온 개기일식은 1970, 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Bonnie Tyler에게 큰 득이 됐다. 그녀의 1983년 히트곡 'Total Eclipse Of The Heart'는 개기일식을 앞두고 다운로드가 급증했다. 개기일식과 관련된 노래들을 소개하는 매체들의 기사로도 'Total Eclipse Of The Heart'는 자연스럽게 홍보됐다. 8월 21일 그녀는 크루즈선에서 한국인 기타리스트 이진주가 속한 DNCE와 함께 'Total Eclipse Of The Heart'를 부름으로써 역사적인 순간을 만끽했다.